암 환자의 진료비 중 본인 부담금은 5%다. 그렇다면 진료비 1천만 원이 나왔다면 환자는 50만 원만 내면 될까? 요즘도 그렇게 순진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대부분 국민은 5%만 내면 된다고 알고 있다. 이유는 '말장난' 때문이다.
본인 부담금(법정 본인 부담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 중에 환자가 내야 할 돈을 말한다. 여기에서 밑줄 긋고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바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다. 만약 이 진료비가 1천만 원이라면 환자는 법정 본인 부담금 50만 원만 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환자가 병원에 내야 할 돈에는 법정 본인 부담금 외에 비급여 진료비가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진료 항목을 말한다.
신의료기술, 고가의 항암제,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 등이 대표적 비급여 항목이다. 4~6인실이 부족하다 보니 급하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1, 2인실을 써야 한다. 상급병실료가 나온다. 수술을 하는 대학병원 교수들은 모두 선택진료 의사다. 선택진료비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한 달 수백만 원의 간병비를 아끼려면 가족이 희생해야 한다.
200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암 환자 1인당 평균 치료비는 2천975만 원에 달했다. 백혈병의 경제적 부담은 6천700만 원, 간암은 6천623만 원이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이런 고액 중증 질환에 걸리면 일자리를 잃고 치료비 부담에 시달린 나머지 가계가 파산하게 된다. 중산층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떨어지고,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빚더미(그나마 빌릴 수 있다면)에 짓눌려 신음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선 후보마다 의료 분야 공약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겠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쉽게 말해 국가가 나서서 환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말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암'백혈병'중풍'심장병 등 4대 중증 질환에 대해 건강보험으로 치료비를 100%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료비 본인 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다른 의료 분야 공약들을 여럿 제시했지만 결국 국민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들 후보의 공약 모두 '비급여 항목'에서 걸린다. 박 후보의 경우,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에 포함한다지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은 재원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결국 환자 부담이 크게 줄지 않을 전망이다. 아울러 4대 중증 질환이 전체 고액 질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그친다.
문 후보는 본인 부담 100만 원 이하 실현을 위해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MRI 및 초음파 등 검사비, 간병비 등도 건강보험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반가운 얘기다. 하지만 돈이 문제다. 비급여 항목을 모두 건강보험에 포함시키면 재정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문 후보 측이 추산한 연간 8조 6천억 원, 5년간 42조 8천억 원으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박 후보도 공약을 이행하는 데 2017년까지 5년간 14조 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료비는 올해 처음 10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민의료비는 비급여를 포함해 모두 101조 2천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2020년이면 242조 6천억 원, 2025년에는 419조 2천억 원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후보들의 공약대로라면 급증하는 의료비 중 상당 부분을 국가가 떠안아야 한다. 국가 부담은 곧 국민의 세금 부담이다. 세금을 더 내든지,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그런데 후보들의 재정 마련 방안은 모호하다 못해 불안하다. 두 후보는 '건강보험 재정 합리화'를 말한다. 보험 재정이 새는 곳을 막고 정작 필요한 곳에 더 붓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새는 곳과 필요한 곳은 누가 정하나? 의료를 둘러싼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다. 행여 내 밥상에 오를 쌀 한 톨 줄어들까 봐 눈이 충혈될 정도다. 말이 쉬워 '재정 합리화'지 사실 핵폭탄의 뇌관이나 다름없다. 건드리면 터진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는 건드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만으로는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가늠할 수 없다. 부디 인기몰이에 영합한 말장난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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