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창녕인 부사 성이성과 담양 관방제림

음나무 등 다양한 수종…학술적 가치

전남 담양의 관방제림(官防堤林'천연기념물 제366호)은 푸조나무, 느티나무, 음나무, 개서나무 등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하지만 제방을 쌓고 유실되거나 붕괴되지 않도록 나무를 심어 보호한 우리나라 몇 안 되는 호안림(護岸林)으로 선조들의 치수(治水)에 대한 지혜가 돋보이는 곳이다.

도시민들의 욕구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기나 수질 등 환경오염과 관계없이 녹지를 훼손해서라도 도로와 주택건설을 늘리는 등 양적 팽창을 선호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생활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맑은 공기, 양질의 수돗물, 쾌적한 환경을 더 중요시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녹지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세입이 넉넉하지 못한 지자체에서는 비싼 땅값으로 부지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지 내에 있는 하천의 둔치나 제방을 활용하고자 하나 이 역시 나무뿌리가 제방의 붕괴를 촉진시킨다는 주장이 반영된 하천법으로 실현하기 어렵다.

그런데 담양의 관방제림은 나무를 심어 제방을 보호하고, 시민휴식공간도 조성이 가능하다는 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사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하천 관련 공무원이나 수문학자들이 반드시 보고 배워야 할 현장이다.

관방제림은 360여 년 전인 1648년(인조 26년) 부사 성이성(成以性'1595~1664)이 제방을 쌓고 심은 나무들이 주류를 이루고, 그 후 1854년(철종 5년) 부사 황종림(黃鍾林)이 보수하면서 일부 보식한 것이 오늘 모습이다.

그동안 많은 태풍과 홍수가 있었지만 아직도 건재할 뿐 아니라, 숲은 세월이 갈수록 아름다움이 더해 2004년에는 전국 아름다운 숲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유서 깊은 담양 고을에 수많은 수령이 거쳐 갔지만 홍수로부터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유지관리를 철저히 한 분은 단 두 분뿐이다. 특히 크고 오래된 나무는 성 부사가 처음 제방을 쌓고 심은 나무들이라고 하니 더 없이 소중한 유산이다.

아호가 계서(溪西)인 공은 본관이 창녕으로 경북 봉화에서 남원부사와 승지 등을 지낸 아버지 성안의(成安義)와 어머니 예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정경세에 보였더니 장차 크게 될 인물이라 하였다고 한다.

1627년(인조 5년) 대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갔다. 정언, 부수찬, 부교리, 지평 등으로 근무했다. 사간(司諫)으로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지나칠 만큼 엄격하게 따지게 되자 이해 당사자로부터 미움을 받아 승진이 순조롭지 못하고 외직으로 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성품이 강직한 공은 인조가 그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선조의 다섯째 아들)을 왕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들이려고 할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채택되지 아니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기도 했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머물고 있는 인조를 구하기 위해 친구 김영조, 응조 형제와 함께 출전했다가 경상감사 심연을 만나 길이 막혀 더 이상 접근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참모가 되었다가 이듬해 인조가 항복한 후 현직에 복귀했다.

1647년(인조 25년)에는 두 번째 호남 암행어사가 되고 이듬해 담양부사가 되어 관방제를 쌓았다. 공은 담양 이외에도 창원, 진주, 강계 등의 부사로도 근무했었는데 고을마다 송덕비가 세워질 만큼 선정으로 백성을 보살폈다. 특히, 강계부사 때에는 삼세(蔘稅)를 면제해 주어 관서활불(關西活佛)이라 칭송하였다고 한다.

혼자 글 읽기를 좋아했으나 찾아오는 사람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정중히 대했다고 한다. 또한 재물에 대해서는 초연해 말년에는 매우 가난하게 살았으며, 1664년(현종 5년)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1695년(숙종 21년) 공직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청백리로 선정되고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계서일고'(溪西逸稿)가 있다.

공이 태어난 집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의 계서당은 중요민속자료(제171호)로 지정되었다. 일부 학자들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나 최근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 도령의 실제 주인공이 성이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설성경'연세대)가 나타나 KBS '역사스페셜'에 소개되기도 했다.

아버지 성안의가 남원부사를 지낼 때 공 역시 남원에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고 이후 호남 암행어사가 되었다. 인근에 새로 조성된 죽녹원과 함께 지금 이곳 관방제림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반가운 것은 이 시대의 이 도령과 성춘향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음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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