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은 명석한 두뇌와 정치 경륜, 세련된 연설로 유명한 정치가다. 논리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말솜씨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탁월했다. 39세에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로 대선에 나설 만큼 일찌감치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1960년 35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그에게 큰 시련이었다.
'무쇠머리'라는 별명대로 성실과 열정을 무기로 아성을 구축한 닉슨과 달리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상원의원 케네디와의 맞대결이었다. 변수는 미국 정치 사상 처음 TV 생중계된 토론회였다. 토론회를 지켜본 유권자 7천만 명 중 절반 이상이 토론회 이후에 누구를 찍을지 결정할 만큼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닉슨의 토론에는 힘이 있었지만 굳은 표정과 쏘아보는 매서운 눈빛, 라디오 연설의 틀을 벗지 못한 말솜씨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반면 케네디는 매력적인 외모에다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춘 호소력 짙은 언변으로 국민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그림자에 닉슨은 가리고 말았다.
18대 대선 TV토론에서 보인 여야 후보들의 말솜씨는 한마디로 기대 이하다. 박'문 두 후보는 눌변이고 이정희 후보는 지나친 공격성과 이념 과잉으로 외면받았다. 세련된 화술도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화법도 찾기 힘들었다. 적어도 정치인의 덕목 중 하나인 토론과 연설에서 장점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흠이다.
그런데 윤여준의 연설이 화제다. 문재인 지지 방송 연설에서 그는 문재인과 새 정치에 대해 차분한 목소리로 연설했다. 마치 이야기하듯 조근조근 말한 그의 연설은 확성기와 율동이 난무하는 거리 유세와는 차원이 달랐다. 단 15분 만에 많은 부동층의 표심을 흔들고 윤여준 때문에 누구를 찍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연설을 득표로만 인식하는 것은 저차원의 계산법이다. 중요한 것은 윤여준식 연설에서 우리 정치가 무엇을 배워야 하느냐는 점이다. 감정과 이념을 앞세우고 목청만 높이는 이정희'강만희식이라면 선거 백번 해도 달라질 게 없다. 새 정치, 대통합의 정치는 바로 윤여준의 연설처럼 상대를 설득하고 공감을 얻는 정치, 결정은 국민에게 맡기는 방식이어야 한다. 국민 스스로 정리하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마음을 움직이는 윤여준 방식이야말로 극단적인 대립과 증오의 정치에 대한 처방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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