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비자가 피력한 사상은 소위 '법가사상'인데, 이는 오늘날 법치사상과 유사하지만, 민주(시민사회)의 법치가 아니고, 제왕의 권력에 의한 법치이다. 그러므로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고대 '전제군주 사상' 내지 '독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내용은 제왕을 위한 것이고, 부국강병을 위한 '국가주의' 사상이다.
동양의 절대왕정 역사에서 겉으로는 유가의 인의도덕을 내세우고, 속으로는 제왕의 통치술로써 이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이용하였다. 여기에 근대적인 인권, 자유, 즉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국가통치라는 정치적 효율성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법에 의한 통치는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는 방법에 유교의 덕치와 인정, 인간의 착한 본성을 전혀 참작하지 않고 술(신하 조종술)과 지도자(군주)의 지위와 권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다. 이때 신하를 다루는 조종술의 요점은 업무분담을 분명히 밝혀주고, 임무 완성이면 상을, 그 반대면 벌을 주는 어찌 보면 아주 쉬운 방식이다. 군주의 세를 유지하려고 권력은 오직 1인만 가지고, 신하가 군주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표정 관리를 철저히 하고(가급적 무표정) 언어도 조심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지도자가 참고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조건이 있다. 옛 군주처럼 국가(또는 단체)를 사유화(영구 통치)할 때에만 가능하다.
법가의 이러한 통치술에는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난 악한 존재로 보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오늘날의 사회생물학적 시각과 유사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타적 유전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사악한 측면, 인간의 한계와 간교함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면 이러한 사상에 대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서양의 마키아벨리(1469-1527) '군주론'과 같은 성격의 책이다. 로마제국 이후 15세기 분열되고 힘없는 이탈리아를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그는 이 책을 썼다. 그는 도덕을 부정한 것도 아니지만, 정치는 그 자체 논리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를 위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사악해질 수 있다는 근대적 사고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한비자 역시 군주의 역할 중에는 도덕 이상의 목표와 통치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한(韓) 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였지만 국토가 좁고 진'초 강대국의 압박으로 국가존망의 위기에 있었다. 한비자는 '법술'(法術)이야말로 부국강병의 첩경이라고 여긴 것이다. 법가사상은 법과 함께 세와 술을 다루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지금 민주사회에서는 법이 국민을 위해 있다. 그런데 정치인이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가지거나 '포퓰리즘에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므로 법치에는 덕치(德治)와 인정(仁政)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동희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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