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연히 공항에 들렀다

며칠 전 나는 인천 근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그 어떤 약속도 없이 공항에 들러보았다.

상해, 시카고, 뉴욕, 호놀룰루, 두바이, 애틀랜타, 타이, 칭다오…. 마침 전광판에 붉은 불이 들어와 깜빡거리고 있었고, 게이트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즉각적으로 그들은 이쪽의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렸고, 내가 선 쪽, 마중 나온 수많은 사람 또한 그 누군가를 찾아 바삐 시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 드디어 한 가족이 서로를 알아봤다. 떨어져 살던 그들, 얼마만의 만남일까. 아내와 남편으로 보이는 두 사람, 서로의 얼굴이 조금은 낯선 듯 미소 지었고, 또 어떤 아버지는 부쩍 자란 딸의 키에 놀라는 듯 손 키를 재보기도 했다. 그리고 저 뒤쪽, 어린 아들을 번쩍 안아 올리고…. 그러한 상봉의 여러 장면을 함께 보던 내 옆의 여자, 옷매무시를 고치고, 머리를 매만지고, 혀를 놀려 볼을 볼록하게 해보고, 손등끼리 쓱쓱 문질러보기도 하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이가 나타난 것일까. 한 남자, 여자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래, 서로 두 팔 크게 벌려 포옹하고, 그러다 머쓱해하고, 다시 환하게 웃더니…. 그제야 비명 같은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저기 나오는 젊은 여자, 그 누구도 알은체를 해주지 않는다. 여자는 그렇게 어디론가 표표히 사라졌다. 그때 휠체어를 타고 온 호호백발의 할머니. 중늙은이 딸이 달려가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엄마…." 그들 모녀의 초라한 옷매무새를, 낡은 신발을, 짐작건대 그들을 괴롭힌 지난한 세월을, 그 피곤을 보며 관객의 자리에 선 사람들은 더러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뒤늦게 나오는 여승무원들, 긴 시간 비행으로 물먹은 솜같이 피곤할 텐데, 끝까지 사뿐사뿐 날아오를 듯 걷는다. 목의 푸른 스카프 끝이 날아오르기에 알맞은 각도로 뻗쳐, 그렇게 올라가 있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온 나비, 나비 같다. 왜 아니겠는가. 장시간 공중에 떠 있다가 저렇듯 땅에 발을 디디면, 꼭 다음 생을 살기 시작한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이 여행의 신비로운 시차다.

만남은 만나기 직전의 설렘이 있는 것뿐일까. 나도 꼭 만나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그를 만날 수는 있는 것일까. 그날 나는 사람들의 만나기 직전 상기된 표정에서 수천 장 나의 필름도 미리 현상해 보았다. 그러나 정작 만나는 순간의 암흑은 무엇인가. 그렇게 암전이 되는 상봉의 묘한 표정이라니. 모든 인연의 희로애락, 그 해독할 수 없는 눈앞의 광경을 한참 지켜보았다.

석미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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