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순(59'여'대구 중구 동인동) 씨는 꼬박 1년을 병원에서 살았다. 지난해 이맘때쯤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간 박 씨는 올 6월이 되어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일 만에 그는 다시 대구 파티마병원에 입원했고, 또다시 6개월째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병명은 장피누공 및 유착. 장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말간 죽조차도 소화할 수 없어 영양식과 수액을 위로 직접 주입하고 옆구리로 난 관으로 배설물을 받아내며 연명하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박 씨가 받은 수술만 10번. 병원 주치의가 자주 찾아오는 등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지만, 아직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박 씨는 "자식들도 결혼시켜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이러고 있으니 큰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과 함께 꼬여버린 인생
부산에서 태어난 박 씨는 1979년 결혼과 함께 대구에 와서 살기 시작했다. 결혼 전만 해도 박 씨는 부산의 한 사무실 경리로 일하면서 평범한 또래 여성들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아가씨였다.
하지만, 친정어머니의 중매로 만난 남편은 결혼생활 내내 도박과 외도를 일삼았다. 더는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던 박 씨는 결국 2001년 이혼했다. 같이 사는 동안 남편은 생활비를 제대로 가져다준 적이 없어 박 씨가 식당일을 하면서 번 돈과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돈 벌고 아이들 키운다고 한눈팔 새 없이 살았어요. 계모임은 꿈도 꾸지 못했고요, 노래방 한번 가 본 적도 없어요."
힘겨운 결혼생활을 버티게 해 준 건 박 씨의 딸(32)과 아들(30)이었다. 특히 딸 류모 씨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속을 썩인 적 없는, 게다가 대학도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던 박 씨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또 찾아왔다. 류 씨는 대학 졸업 후 2005년 육군 부사관에 입대해 4년 동안 복무했고 뒤이어 장교 선발 시험에 합격해 여군으로서 성공하리라는 꿈을 키워나가던 중 불상사가 생겼다. 장교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다가 우물처럼 깊은 웅덩이에 빠졌는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고, 이때 갑자기 급습한 공포를 느끼고서 조울증을 앓기 시작한 것.
"딸이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국군수도병원에 갔더니 상태가 말이 아니더군요. 나사가 풀린 듯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애지중지 키운 딸이었는데 그렇게 된 모습을 보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세 번이나 넘긴 죽을 고비
박 씨는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23년 전 배가 너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박 씨는 처음으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소장이 썩어가고 있었대요. 소장에 혹이 큰 것이 세 개가 나 있고 그 주위로 썩어가고 있어 4, 5개월밖에 못 산다더군요. '나 죽고 나면 남은 아이들은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박 씨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말에도 자신이 죽고 나면 힘든 인생을 살지 모를 두 아이를 생각하면서 힘겨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1년 뒤 혈변을 본 뒤부터는 더는 아프지 않았다.
건강을 회복한 박 씨는 자녀를 키우려고 다시 식당 일과 신용카드 배달 아르바이트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20년 넘게 건강을 유지하던 박 씨는 지난해 다시 쓰러졌다. 이번에는 소장이 서로 붙기 시작한다는 것. 의사들은 박 씨의 딸에게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에 박 씨는 수술 결심을 하고 다시 수술대에 올라 소장의 협착을 막는 수술을 받았다.
박 씨는 "올 6월 7일 퇴원 후 똑같은 증상으로 다시 쓰러져 27일 입원했을 때도 의사는 '4개월을 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걱정했지만 6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 살아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했다.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는데 살려고 노력한 이유는 딱 하나예요. 내 자식들에게 해 준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 결혼하는 것까지만이라도 보고 싶고 엄마로서 도움 주고 싶어요."
◆기댈 곳이 없다
박 씨는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아직 60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쓰러져 입원하고 나서 병원비를 낸 뒤 더는 모아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사했는데 이때 내야 했던 보증금도 박 씨 입원비로 들어갔다. 그전에 모아뒀던 돈은 딸 류 씨의 정신과 질환 치료비로 모두 들어갔다.
국가의 지원도 더는 기대할 수 없다. 지난해 긴급의료지원금 440만원을 이미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딸 류 씨가 몇 달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불어가는 박 씨의 병원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다.
"매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찬바람 맞고 일하고 와서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내 옆에 와 잠드는데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내가 어서 나아야 딸도 자기 인생 찾아갈 텐데…."
박 씨 주변에는 박 씨를 도와줄 친척도, 이웃도 없다. 남동생 두 명이 있지만, 친정어머니의 재혼으로 아버지가 다른 형제라 데면데면한 사이다. 박 씨는 "결혼 후 어렵게 살다 보니 친척도 친구도 다 연락이 끊겼다"며 "남들에게 베풀어 준 것도 없고 내가 이뤄놓은 것도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던 사람들과 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박 씨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2년째 연락이 안 되는 아들이다. 아들은 박 씨의 전화로 연락하면 받지 않는다. 간혹 딸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걸로 만족한다.
박 씨는 "아들이 자칫 남편처럼 될까 봐 엄하게 키웠는데 그 때문에 섭섭하고 맺힌 게 많았던 것 같다"며 "서울 가서 회사에 취직했다는데 '서울살이가 힘들면 연락하겠지'하고 생각하며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자식 앞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는데, 요즘은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요. 딸이 '엄마가 울면 되게 웃길 것 같아'라고 하던데'''"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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