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디 아민이다. 정규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운동장도 못 밟아 본 이 무식한 독재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기행으로 1970년대 신문 가십난을 장식했다.
각료회의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장관이 있으면 즉석에서 뺨을 후려갈기는가 하면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다리 밑으로 기어가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30만 명의 국민을 이유도 없이 재판도 없이 죽이고 그 인육을 요리해 먹어치워 우간다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온 지구인들을 소름 돋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세베니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정권을 잡고 피폐해진 나라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중동부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넓이 정도의 우간다. 불모지가 한 평도 없는 비옥한 땅을 갖고 있어 영국은 이 나라를 '아프리카의 진주'라 불렀다.
우간다에는 골프장이 9개나 있다. 그중에서도 이 나라 수도 캄팔라 시내에 있는 우간다 골프클럽이 으뜸이다. 골프클럽 회원들의 면면은 그대로 이 나라 권력과 부의 상징이다. 이 골프클럽 회장은 경찰청 부청장 존 키셈보라는 사람인데 무세베니와 동향 출신 심복으로 이 나라의 2인자다. 이 골프클럽 챔피언, 말하자면 우간다 랭킹 1위는 놀랍게도 우리 한국인 최영식 씨다. 경찰청 부청장 존 키셈보는 챔피언 최영식 씨의 골프 제자다.
골프로 쫄딱 망했다가 골프로 일어선 우리의 골프영웅 최영식 씨. 그는 동국대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골프에 입문했다. "24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했다면 재벌 총수이거나 고관대작이어야 했을 텐데…"하고 슬쩍 물어보니 "집안 기둥뿌리 뽑기 시작했지요. 뭐"하고 대답한다. 그는 지방 토호의 맏아들이었다. 직장생활이 성에 차지 않아 정치판에 뛰어든 뒤에도 골프채는 계속 휘둘러 그는 싱글 핸디 캐퍼가 되고, 더욱더 골프의 묘미에 푹 빠진다. 정치판에 11년 동안 휩쓸려 다니며 여당의 지구당 위원장까지 했지만, 그 좋던 집안 살림 다 날리고 난 뒤 어느 날 문득 기나긴 미몽에서 깨어난다. 정치판에서 과감하게 탈출한 것이다. 이후 최 씨는 건설회사에 발을 들여 놓는다.
"돈만 쓰던 정치판에 굴러다니다 한 푼의 돈에도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업에 그것도 막노동 판에 빠지고 보니 나는 숙맥이 되더라고요." 다시 최 씨는 정치판에서 맺은 연줄로 법원 별정직으로 특채되어 공무원으로 새 출발 한다. 6년 동안 별 탈 없이 일하고 휴일에나 치는 골프의 칼날도 더욱 예리해졌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공무원 골프'가 철퇴를 맞게 된다. 그는 몇 번이나 경고를 받게 된다. 그러던 중 그가 찾아온 곳이 바로 우간다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살 땅이다.' 최 씨는 무릎을 쳤다. 시내에 있는 골프장, 입회비는 800달러. 그린피 단돈 1달러, 사시사철 푸른 잔디…. 그는 두말없이 서울로 돌아와 집을 팔고 식구들과 함께 우간다에 이민을 와 버렸다. 여기에 와서도 그는 사업할 궁리는 하지 않고 맨 먼저 우간다 골프클럽 회원 가입부터 했다. 회원들 사이에 수군수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웬 자그마한 동양인이 드라이브를 300야드나 날리고 툭하면 언더파를 치고…."
그럴 때쯤 최 씨는 자비를 들여 홀마다 야드 마크를 박았다. 그즈음 우간다의 2인자 경찰청 부청장이자 우간다 골프클럽 회장이 근사한 저녁식사에 초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한 술 더 떠 대형 휴대용 냉장고 3대를 수입해 기증했다. 3개의 그늘집이 생긴 것이다. 기라성 같은 정'관'재계의 인사들이 최 씨와 라운딩 한 번 하려고 줄을 서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그는 우간다 컨트리클럽의 유명 골퍼일 뿐만 아니라 우간다의 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는 타고난 부드러운 성품과 정치판에서 갈고 닦은 친화력으로 우간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우간다엔 9개의 골프코스가 산재해 있지만 골프 연습장이 하나도 없다. 그는 널찍한 자기 집 앞마당에 그물을 설치하고 무료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그에게 스윙 한 수를 배우려고 꼭두새벽부터 찾아오는 얼굴들이 쟁쟁하다.
최 씨는 현재 한국타이어 우간다 대리점을 운영하며 정부 차량에 타이어공급을 거의 독점해 우간다 타이어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세 명의 하인을 두고 있을 정도로 그의 삶은 급전환을 이루었다. 오늘도 경찰청 부청장이 보내준 현직경찰 2명이 북한제 소총을 들고 24시간 내내 그의 집을 경비해 준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최 씨는 변방에 사는 노인이고 골프는 그 노인의 말이다.
글'사진 도용복 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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