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죽음과 죽는다는 것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인 죽음과 내가 겪은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해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달이었다. 서울서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겪고서야 비로소 한국의 장례 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또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2주 만에 독일에 계신 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보니 예전에 죽음과 장례 의식에 대해 막연하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사찰에서의 수도생활(한국생활 초반)이나 10여 년 전 향교에서의 전통 혼례 경험 등 한국 고유의 의례들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 그런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장례식이란 그저 조문객으로서 부의금 봉투를 부의함에 넣고 인사말을 하고 오는 일이었다. 장인어른의 죽음은 한국의 삶을 제대로 보는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의례가 가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음가짐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장인어른이 예정에 없던 심혈관 수술을 받고 나서 모든 가족의 생활은 바뀌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황급히 병원으로 불려갔다. 중환자실 앞에는 환자들의 가족이 마련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작은 캠프와도 같았다. 환자의 호전만을 기다리며 개인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보호자 가족들의 모습이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웠다. 독일에서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 외에는 중환자실 근처에는 있을 수조차 없다. 만약 환자 가족이 중환자실 앞에서 잠을 자려 한다면 병원 관계자들은 곧바로 경찰에 연락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를 중환자실에 두고 있다면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당연했다. 나 또한 나의 아내, 장모님, 매제 그리고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장인어른의 고통을 나누며 줄곧 병원에서 지냈다. 한밤중에 성급한 발걸음으로 의사들이 다녀가고 나면 누군가 흐느껴 울기도 했다. 어느 저녁 우리는 모두 중환자실에 불려 들어갔다. 어떻게 한 사람의 생이 사라져 가는지를 보게 됐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서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죽은 육신은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옮겨졌고 30분 후 우리 모두 장례식장 사무실에 앉아 관과 조화, 조문객을 위한 음식 등 장례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들은 주변에서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펄쩍펄쩍 뛰놀다가 할아버지가 어디 계시느냐고 물어왔다. 당혹스럽고 황망스런 순간. 이 모든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 누군가 내 인생에 리모컨이 있다면 '빨리 재생하기'라도 누르는가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모두 장례식장 안에 있었다. 곧 가족 친지와 조문객들이 도착했다. 조문객은 절을 한 뒤 상주와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한 조문객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멀리 다른 도시에 사는 많은 친구도 찾아왔고, 베이징에 거주하는 아내의 외숙부도 먼 길을 마다치 않았다.

이제껏 한국의 모든 장례 의식이 다소 경직되고 형식적이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우리도 계산적으로 대하는 장례식장의 태도가 내심 못마땅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참으로 아름다운 장례식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많은 사람의 정성스런 문상으로 더욱 큰 감동을 받았다. 결혼 이후 8년 만에 다시 보는 친지들이 정말 반가웠다. 먼 곳에서 이른 새벽 시간에까지 와서 조의를 표하는 것을 보며 내 스스로 가족과 한국사회의 일원임이 느껴지고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졌다. 한국의 장례식이 독일보다 훨씬 더 인간적임을 깨달았다.

중환자실 앞에서 보낸 병원 '캠핑'은 내 한국 가족과 함께 떨어지지 않고 보낸 시간 중에 가장 길었으며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마침내 장모님께서 장인어른의 시신이 화장터로 들어가자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렸다. 장모님을 안고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 괜찮아질 거라 말씀드렸다. 그 순간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가족으로서 확고히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아내는 내 아버지의 장례식 부고문과 초대장을 쓰는 내 어머니 옆에서 마치 딸처럼 돕고 있다.

안톤 숄츠/코리아컨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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