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끝난 잔치, 시작한 잔치

잔치는 끝났다. 5년 만의 큰 잔치였다. 박빙 승부가 관심이었지만 결과는 좀 싱거웠다. 늦은 시간까지 마음 졸임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웠지만, 그 후유증을 생각하면 차라리 쉬운 결과가 나을 수도 있겠다.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규정됐다. 또 결과도 그렇게 보인다. 75.8%의 높은 투표율에 비춰 국민 잔치라 해도 되겠지만 5년마다 벌어지는 것이고, 총선과 자치단체 선거라는 작은 잔치도 많으니, '그 잔치가 그 잔치'라는 선입견도 없지 않았다.

어느 시점부터 양자 대결로 판이 짜이면서 결과는 특정 후보에 대한 특정 지역의 몰표가 나타났다. 그래도 고질병처럼 계속된 지역감정이나 색깔 논쟁이 많이 줄어든 것은 다행이다. 반면 정책이나 공약 대결이 아닌 네거티브 전략이나 흑색선전은 여전했다. '선거는 이겨야 하는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SNS라는 새 소통 수단의 득세에 따른 부작용, 인터넷의 발달로 전성시대가 왔다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많은 논객(論客)의 입 탓일 터이다.

말이 잔치이지 승패가 갈리고,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전쟁이었다. 목숨을 건 싸움이었지만, 승자인 당선인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중국 주(周) 문왕은 전장으로 나설 때는 몸의 치장을 풀고 버선 끈을 스스로 묶었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 모든 고통을 다하고, 신하가 자신을 돕는 데 수고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후한(後漢) 때,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로 부임하자 백성이 오고(五袴)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오고란 다섯 겹을 댄 바지다. 당시 화재가 심해 불의 사용을 법으로 금했다. 염범은 백성의 고통을 헤아려 불을 사용하도록 하고 대신, 물을 충분히 준비하고, 예방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래서 백성은 다섯 겹을 댄 바지를 입은 것처럼 따뜻하게 밤을 보낸다며 그를 칭송했다.

이 옛일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배려다. 바꿔 말하면 국민의 소리를 잘 듣고, 그 어려움을 잘 이해해, 언제나 국민의 편에 서는 것이다. 한때 서구 자본주의를 부정하며 선명성을 요구한 '넌 어느 편이냐'(Which Side Are You On?)라는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국민 편'이라고 답할 수 있도록 정치를 해 달라는 것이다. 헌정 64년 동안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만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나라처럼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다. 독재자 혹은 불명예 대통령, 딱 두 가지 부류다. 타계한 분은 차치하더라도 생존한 대통령도 나라의 큰 어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국민 편이 아니라 권력의 편, 자기 사람의 편으로 산 5년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부끄러움을 남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대통령의 궤적만 훑어도 당선인이 가야 할 길은 뚜렷하다. 지난 여러 대통령의 5년을 돌이켜보면. 첫 2년은 마치 못할 일이 없다는 듯이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3, 4년 차가 되면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고, 마지막 5년 차에는 퇴임 뒤 사법 처리를 두려워했다.

어쨌든 잔치는 끝났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잔치는 이제 시작이다. 낙선자가 그린 꿈은 허망하게 끝났지만, 당선인의 현란한 현실은 앞으로 5년 동안 계속할 것이다. 맹자에 '영문광예시어신 소이불원인지문수야'(令聞廣譽施於身 所以不願人之文繡也)라는 말이 있다. 좋은 평판과 명예가 갖추어져 있으니, 다른 이가 입은 화려한 옷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뿐 아니라 명예만으로도 충분할 권력자가 많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명예와 함께 남의 화려한 옷까지 탐냈다. 명예와 아늑한 집 대신 치욕과 교도소를 택한 것이다.

당선인은 이 잔치의 흥겨움과 즐거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선이 확실해졌을 때,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몰린 지지자와 악수할 때,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자 차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에 느낀 가슴 벅참을 꼭 기억해야 한다. 유세장에서 만난 지지자의 따뜻한 손과 군중이 연호할 때 온몸이 저리게 퍼져 나갔을 그 소름의 감동을 늘 가슴에 안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권력의 5년을 국민 편에서, 국민과 함께 나누고, 다음 대통령 선거를 꼭 웃으며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