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이 겨울, 촛불이 되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아침 출근길에 한 자루 촛불 같은 할머니를 만난다. 그녀는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는 몸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큰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은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모은 것을 팔면 2천원을 번다. 직장인들 한 끼 식사 값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요즘은 고물상에서 폐지 값을 싸게 매기는 탓에 그 돈도 벌기 힘들다. 입김마저 얼어버릴 것 같은 날씨에도, 힘없이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삶의 생명줄을 놓지 않으려는 저 할머니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인의 마음을 밝혀주는 촛불이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취직이 안 된다고 쉽게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저 할머니를 보았더라면 생각을 바꾸지 않았을까? 비록 힘없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삶의 자세는 절망으로 얼어붙어 가는 우리의 감성을 녹여준다.
할머니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어, 아니 저 작고 가녀린 양초에 불을 붙여 주고 싶어 나는 보고 난 매일신문을 차곡차곡 모은다. 쭈글쭈글해진 할머니의 손에 신문 몇 장을 전해주며 인정이 가득 담긴 눈길을 보내는 일이 각박한 도시에서 사느라 바싹 메말라 버린 나의 감성에 단비를 내려주는 것 같다.
할머니의 차가운 손에 구깃구깃한 폐지를 모아 드리면,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 방금 공사를 마친 고속도로처럼 펴진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촛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계속 고개를 숙이는 할머니를 보면, 내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드릴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죄송해요, 제가 돈을 드린 것도 아닌데 뭘 그러시냐고, 한숨 섞인 혼잣말을 반복하면서. 그러나 그러는 내 몸에 촛불의 따스함이 퍼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촛불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더 추워진다는 이 겨울, 촛불의 행진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성의 온도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상민(대구 북구 산격4동)
♥시1-며느리 생일
밤사이 찬바람이 몹시 불어
내일의 일거리가 걱정이다.
새벽 5시
야들아 나오너라 보자
어머니 목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난 며느리, 딸, 아들이 삼삼오오
가로등 아래로 모여 든다
소금에 힘없이 늘어진 배추가
고무 방티(대야)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면으로 된 장갑 위에 목 긴 고무장갑을 낀다
방티에 담긴 절여진 배추를 하나, 둘, 그리고,
발 위에 머금은 물 빠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밤새 떨어진 기온으로 발에는 고드름이 언다
배추가 쌓여간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허리 펴고 숨을 고른다.
한쪽에서는 추위를 녹이려고
모닥불이 연기를 내뿜으며 불탄다.
모두가 불 가까이 다가온다.
얼었던 몸이 조금은 녹아내리고
손과 발이 따뜻해 온다.
준비한 양미리가 석쇠에 올라앉아
누르스름한 빛깔을 뽐낸다.
소주 한잔으로 속을 달래며
밝아 오는 여명이 가슴 가득 벅차오른다
샛별이 동쪽 하늘에 그 자태를 혼자만 즐긴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먹을 것 없는 시절에 김장하는 날이
며느리 생일이라고.
듣고 있던 며느리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렇게 생일은 농심으로 익어간다.
이동희(영주시 상망동)
♥시2-흰둥이가 생각난다
흰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누나 집 강아지 두 마리가 생각났다.
마치 흰 눈으로 만들기라도 한 듯이
순하기만 했던 흰둥이 두 마리
나는 그냥 두 마리 모두를
흰둥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흰둥이 한 마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홀로 남아있을 흰둥이 한 마리가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오랜만에 찾아갔던 누나 집
그날은 차가운 겨울바람에다
세상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옛날에 두 마리가 함께 지냈던 집도
이젠 홀로 남겨진 흰둥이 한 마리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남은 흰둥이에게만은 바닥에 깔린 흰눈이
차가운 외로움의 빙판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의 솜털이불이 되기를….
하늘에서 흰 눈이 내리는 오늘도
흰둥이가 자꾸만 생각난다.
조상현(대구 달서구 상인1동)
♥송년
가는 세월의 마음 오죽 아프랴.
보내는 마음 또한 얼마나 서러우랴.
가고 싶어 떠나고,
보내고 싶어 보냄이 아니지만,
언제나 이별은 안타까운 것.
그러나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어차피 정해진 자연의 섭리이기에,
우리들은
또 한 해를 곱게 배웅해야 한다.
떠나가며 남긴 세월의 교훈
잘 되새김하며,
새해엔 보다 더 값진 한 해가 되게끔,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좀 더 알찬 땀방울
진주(眞珠)처럼 소중하게 흘려야 하리.
정창섭(밀양시 삼문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권미해(대구 수성구 욱수동)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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