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 박근혜 시대 통합의 정치

하룻밤 사이에 평지의 마음은 극락과 지옥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유권자의 절반이 축제를 만끽하는 동안 다른 절반은 세간 말로 '멘붕'의 나락을 굴렀다. 그 하룻밤을 지나 무릇 박근혜의 시대가 도래했다. 제도화된 권력 경쟁과 유권자의 엄중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시대는 정당하다. 그리고 박근혜 시대의 앞날은 축원받아야 마땅하다. 공감하듯이 박근혜 시대의 등장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민주화의 역설로 불렸던 25년간의 투표율 하락은 그 앞에서 급반등하였다. 또한 그는 민주화 이후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과반수 득표 대통령을 국민에게 선물했다. 이뿐이랴. 그는 동북아시아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정권 교체를 넘어 시대 교체를 부르짖은 박근혜의 꿈은 이루어졌다. 이제 권좌의 주인이 아니라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이다. 아마도 지금 수많은 언론 매체의 지면에서는 그에게 통합을 주문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통합의 정치를 제일성으로 요청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첫 삽을 뜰 것인가? 선거 결과는 진보와 20~40세대 그리고 수도권'호남의 다수가 박근혜의 정치적 반대자임을 드러냈다. 따라서 어제의 반대자를 내일의 동반자로 돌려세울 일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통합의 정치에 모두 실패했다. 그만큼 인심 얻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실체적 통합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체적 통합은 이념, 세대, 지역 간의 괴리를 성찰하고 반대자를 포용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무엇보다 이념적 반대집단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불통' 이미지가 불식된 건 아니다. 특히 경쟁 집단에 덧씌웠던 종북의 굴레를 벗기고 화해 어린 소통을 추구해야 한다.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마저도 사상의 일치는 무덤가에 가서나 찾으라고 일갈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또한 임기 내내 독재자의 딸로 내몰릴 것이다. 비록 아버지의 과오를 사과했지만 반대자들은 선거에 떠밀린 정치공학적 반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권위주의 유산과의 완전한 결별과 청산을 진행할 필요도 있다. 그것이 시대 교체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20~40세대와의 화학적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이들 세대는 지금 90%에 달하는 50대 투표율로부터 전율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노령 세대는 산업화의 수혜자이지만 젊은 세대는 IMF 경제 환란의 피해자이다. 그런 이들과 말춤을 함께 춘다고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훈련과 실용적 사고는 이들 세대의 강점이다. 즉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민주적으로 집성하고 과실을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고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반값 등록금과 비정규직 이슈는 세대 통합의 첩경이다. 이 문제는 시장주의자들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진보 집단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 통합은 박근혜가 짊어진 희대의 과제이다. 유감스럽지만 아버지가 권력을 찬탈한 그날로부터 대구'경북은 줄곧 정치적 패권의 아성이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또한 TK 지역주의의 수혜자로 등극하였다. 반면 여전히 호남은 정치적 유배지로 유권자의 90%는 그와 집권당을 반대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탄식한다. 이제 부마항쟁은 사그라지고 광주항쟁만 살아남았다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박근혜 시대는 호남과 화해할 수 있는 적기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딸이기에 통합의 효과는 극대화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인사와 산업과 제도적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임기 동안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생색 내기가 아니라 진심이다.

박근혜 시대는 유권자의 회고적(retrospective) 투표가 아니라 전망적(prospective) 투표를 통하여 개막되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즉 여론조사에서 60%의 유권자들은 정권 교체를 열망했지만, 결국 과거를 묻어두고 미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선택한 그 미래가 바로 시대 교체의 지점이다. 그리고 시대 교체는 이념과 세대와 지역의 실체적 통합으로부터 첫 삽을 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권자가 선택한 미래가 화무십일홍 권불오년(花無十日紅 權不五年)의 첫날이 될 수도 있다.

장우영/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