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언제까지 우리 것만 좋다고 주장할 것인가?"
이 책은 박제가가 제기한 이 질문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대 전란을 겪고 난 17, 18세기 조선은 부국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변혁은 커녕 기존의 체제만을 고집한 채 이를 거부한 사회적 풍조가 만연했다. 결국 조선은 낙후됐고 망국과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마저 초래했다.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저자 임용한은 조선 실학사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온 박제가의 삶에 주목한다. 우리는 '북학의'를 통해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개혁을 외친 박제가라는 이름 석자 정도를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검토는 부족하다. 박제가는 죽고 죽이는 당쟁이 지배했던 정계 진출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나라를 고민하고 꿈꿨다. 비록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하고 통찰했던 선각자다.
박제가는 어릴 때부터 이미 탁월한 통찰력과 판단력, 방대한 학식과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났다. 하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적 차별과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 때문에 주류 사회에서 따돌림과 무시를 당했다. 그는 허울만 가득한 조선의 양반'학자'선비'지식인 등 편협하고 답답한 집단을 비웃었지만, 기득권 세력의 벽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천재는 뜻을 펴볼 기회를 잃었다. 정조에 의해 발탁되었으나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가로 막힌데다 정조의 죽음 이후에는 유배 생활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각은 '북학의'에 잘 나타나 있다. 북학이라는 이름처럼 그의 사고에 결정적인 변화를 준 것은 청나라 수도 북경으로의 '연행'(燕行)을 다녀온 경험이었다. 특히 상공업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그는 성벽'도로'목축을 비롯한 39가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개혁 방안과 중상주의론을 꼼꼼하게 적어 나갔다.
특히 이 책의 2부에는 박제가가 통찰한 조선사회의 한계를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다. 저자는 박제가가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문화, 우리 것에 대한 습관적인 태도, 맹목적 자부심에 비판을 가하는데, 21세기 한국사회도 여전히 감상적인 국수주의와 자기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사회 상류층도 끼니를 건너뛰기 일쑤고, 선비들은 종이가 없어 책을 쓰지 못하며, 소 한 마리 갖지 못한 농부가 태반인 나라 형편에도 조선은 비효율적인 농본정책과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선택했다. '소비와 욕망을 없앤' 비극적인 사회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은 커녕 주변사람들조차 설득하지 못했다.
21세기 한국 사회 역시 박제가가 가졌던 의문과 실망이 그대로 유지된다. 박제가의 물음은 유효하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리지어 비웃고, 또 덩달아 이를 업신여긴다. 좁은 소견으로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엿보고, 틀에 박힌 안목으로 끝없는 변화를 논하곤 한다." 박제가가 겪었던 사회적 부조리는 똑같이 현재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변화의 싹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며 치열하게 살다간 선구자 박제가였다. 320쪽. 1만5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