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책의 이면

책의 이면/설흔 지음/역사의아침 펴냄

책은 사람이 만든 물건이긴 하지만 물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사람이 평생 이룬 지식과 지혜의 총집합이 책이라면, 그 책은 그만의 작은 영혼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은 책이 사람을 읽고, 또 사람이 책을 읽는다는 독특한 시각으로 구성돼 있다. 때로 책이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할 것이다. 유배지에서 자신이 누구보다 믿었던 임금,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는 날 조광조가 느꼈을 당혹스러움을 책 '근사록'이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함께했으며 사약을 받은 그 순간에도 옆에 있었던 이 책은 조광조의 쓸쓸한 눈빛만 보고도 그의 속내를 짐작한다.

한 달 새 자식과 아내를 잃은 유학자 심노숭의 고뇌는 그가 평생을 읽었을 유교 경전이 아닌 석가세존의 말이 담긴 '능엄경'의 눈과 입으로 구체화한다.

저자는 사료에 확인할 수 있는 흔적과 역사 인물이 남긴 기록을 통해 인물의 모습, 심리, 주변 상황을 재구성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술한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은 책에서 만나 풍부한 서사를 제공한다. 1658년, 제2차 나선정벌의 전말을 담은 신류의 '북정일기'는 약한 나라의 장수, 약한 나라의 군대가 타국의 전쟁을 대신해 겪은 고난의 기록으로 재탄생한다. 소혜왕후 한 씨가 지은 '내훈'은 왕실 여인들의 지침서이기도 하지만 성종 이후 벌어지는 '연산군의 파국'을 추측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하기도 한다.

스물네 권의 책과 스물세 명의 조선시대 인물이 등장하는 이 책에는 사람과 책이 서로 읽은 내밀한 상념의 흔적과 기록이 담겨 있다. 책과 사람, 그 내밀한 대화를 통해 조선을 읽는 새로운 통로를 만날 수 있다. 240쪽, 1만2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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