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두 명의 여성이 있다.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인 에바 페론(1919~1952)과 이사벨 페론(1931~)이다.
에바 페론은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로 유명한 뮤지컬 '에비타'의 실제 주인공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딛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그녀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아서 '인생 역전'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성녀로 불리기도 하지만, 권력과 욕망의 화신이었다. 남편 후안 페론이 권좌에 오른 것도,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한 것도 그녀의 인기 덕분이었다. 34세의 나이에 병으로 일찍 갔지만, 죽어서도 편히 묻히지 못했다. 페론주의를 두려워한 군부에 의해 시신이 탈취돼 24년간 외국을 떠돌았다. 그녀를 두고 '비극적인 여성'인지 '성공한 여성'인지 제대로 판단하기 힘든 대목이다.
더 웃기는 것은 후안 페론이 망명했다가 귀국해 1973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면서 무용수 출신의 세 번째 부인 이사벨을 부통령으로 지명했다는 점이다. 후안 페론이 급서하자, 이사벨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고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 이사벨은 3년 뒤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긴 했지만, 에바 페론이 쌓아놓은 후광에 힘입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행운아'였다. 에바와 이사벨은 정도의 길을 걷지 않고 자신의 욕심에만 충실한 여성들이었기에 아름답게 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여성 대통령'총리 10여 명이 탄생했지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인도네시아, 인도, 파나마, 아르헨티나 등의 여성 대통령'총리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정상에 올랐지만, 제대로 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들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여성 수반들이었다. 아무리 여성 리더십이 대세라고는 하나, 국민을 위해 노력한 만큼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단순히 아버지 후광 덕분에 대통령직에 오른 것은 아니다. 15년간의 정치 역경 속에서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 오늘의 영광을 맛보았기에 분명히 그들과는 다를 것이다. 부디 5년 뒤에는 아름답게 퇴장하는, 훌륭한 여성 대통령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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