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로부터 '가족 자축(自祝)'이라고 적힌 선물이 왔다. 일본에서 '자축' 선물은 출산'입학'성인'취업'결혼'신축 등의 축하 답례로 보내는 것이다. 출산 자축은 태어난 아이의 축하 피로연도 겸하기도 한다. 육각의 색종이로 장식된 포장지에 아이의 이름을 쓰거나 이름 꼬리표를 붙여 보낸다. 내게 보낸 선물에는 '미'(美)라는 여자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출산 전부터 여아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여자아이다운 아름다운 이름이다.
태어날 아이의 성별은 예부터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최근 일본에서는 천황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를 잇는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기는 하지만, 지금도 태어날 아이의 성별에는 관심이 많다. 본인이 원치 않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만, 출산 전 의사가 성별을 알려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산 전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알면, 부모는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거기에 맞게 준비를 할 수 있다. 육아 책이나 아이 용품을 맞춤으로 준비할 수 있다.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성별을 알면 거기에 맞는 이름을 지어놓을 수 있다.
얼마 전 내가 맡고 있는 '젠더'(gender'성)에 관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아이 이름 짓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인간은 국적'성별'나이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자기만의 유일한 존재이다. 학생 가운데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젠더 규범의 강요에 위화감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학생 중에는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이름을 짓겠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남자답거나 여자다운 이름을 짓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유는 사회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요구하고 있고, 아이가 놀림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부모가 자신의 희망을 담아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부모와는 서로 다른 개체이다. 부모의 희망과 아이의 희망이 같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이름은 자녀에게 부담과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어에 '이름값도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이름이 너무 크고 훌륭해 본인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이다. 또 '성 정체성 장애'를 겪는 사람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다른 남성스러운 이름이나 여성스런 이름을 갖고 있다면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개명(改名)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개명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일본에서는 호적상 이름의 개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명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아이들의 경우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최근 '튀는 이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부모의 취미 등이 반영된 이름이다. 일본어에서는 특히 이름이나 지명에 쓰인 한자는 나름으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광주(光宙)라고 쓰고 '피카츄'(포켓몬스터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라고 읽는다. 또 '애'(愛)라고 쓰고 '러브'라 부르고 '황제'(皇帝)라 쓰고 '시저'로 읽는 등의 방법이다. 커서 아이가 곤란해하지 않을까 하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이름 짓기는 미래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 아이를 위해 정말 고민해서 지은 이름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을 요구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규범을 강요하지 않는 이름은 그 아이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쓰이는 '소라(空)/하늘' 같은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엉뚱한 이름이 많아지고 개명하려는 사람이 증가하면 이름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바뀔지도 모른다. 이름이 평생 가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국가 관리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생겨난 새로운 전통에 지나지 않는다. 병마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개똥이'와 같은 천한 아명(兒名)을 짓기도 한다. 개명이 자유로워지면 자신이 이름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평생 가져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름을 지었다.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면 기쁘지만, 이름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주면 좋겠다.
미야자키 치호/일본학술진흥회 특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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