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감정정리가 중요해요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록이다. 직업상 이유로 관심이 없을 수 없다. 허모(74) 할아버지는 인생 마무리를 깔끔히 했다. 췌장암이 걸린 후에도 전직 세무 공무원이었던 직업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참 꼼꼼했다.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편안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했고, 유산도 아들과 딸에게 정확하게 나누어 주었다. 할머니하고 맛있게 먹었던 순두부찌개 식당도 다시 가봤다. 서류로는 너무도 완벽해서 분쟁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웰다잉(well-dying) 필수조건인 사전의료지시서와 유언 남기기의 확실한 본보기였다. 그러나 막상 할아버지가 호흡이 가빠올 때 할머니와 딸은 그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금고번호를 물었고, 대답하지 않은 섭섭함으로 임종실에는 아들뿐이었다.

유명한 모기업인도 생전에 변호사를 통해서 얼마나 인생정리를 잘 했을까. 그러나 그가 떠난 후에 자식들의 재산과 감정의 대립은 제사까지 따로 지낼 정도라고 신문에 보도된다. 살면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세심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정리한 서류상의 마무리는 남은 자들에게 원망과 아쉬움만 남긴다.

김모(75) 할머니는 척추에 전이된 암 때문에 양 다리가 타는 듯이 아파왔고 하반신 마비도 왔다. 그녀의 오른쪽 눈은 오래전 사고로 인해 젊어서부터 보이지 않았다. 순탄하지 못한 인생이었다. 막내딸이 걸어주는 전화에 "영감, 보고 싶소"하고 성한 왼쪽 눈으로 눈물을 흘려도 남해의 한 바닷가에 있는 할아버지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오매불망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직접 구급차로 남해까지 갔더니 할아버지가 넙죽 큰절을 했다. 미안하고 서글퍼서 갈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평생 자신의 의견이라곤 없었던 할머니답게 유언도 사전의료지시서도 만들 줄 몰랐지만, 가족은 그녀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불편한 마음들이 마지막이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상상한다.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감정의 정리는 인생의 막바지에는 오히려 힘이 든다. 할 여유가 없다. 감정이라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은 마음의 유쾌하고 불쾌한 상태이다. 그리고 쌍방향이다. 이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좀 필요하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지만, 죽음 앞에서도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감정의 정리'는 행복한 마지막을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그 무엇보다 필요한 올해의 버킷리스트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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