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대구 무효 투표율 가장 낮아

이번 대선에서 재미(?) 있는 통계 하나를 발견했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 무효 투표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3천72만1천469명이 투표한 가운데 무효로 처리된 투표수는 12만6천838표였다. 0.41%가량이다. 소중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영주시(11만4천 명'20011년 말 기준) 인구보다 더 많았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투표했던 것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무효투표의 흔한 유형은 정규 기표 용구가 아닌 기구의 사용, 후보 구분선상 기표 등이다. 후보 두 명 이상에게 도장을 찍어주는 고의성 짙은 경우도 있다. 물론 본인은 '기권보다 강한' 항의의 표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눈에 띄는 것은 대구의 무효 투표 비율이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낮았다는 사실이다. 158만5천806명이 참여한 가운데 무효표는 0.25%(3천966명)에 그쳤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던 17대 대선 당시의 0.33%보다 더 줄어들었다. 전체 투표자의 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수치이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구가 80.14%라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몰표를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내준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투표 무용담도 넘쳐난다. 혹한에도 큰 계약을 따냈을 때 입었던 가을 양복을 입고 투표했다는 40대 기업인, 3시간 넘게 걸려 고향에 다녀왔다는 30대 직장인, 시집간 딸의 '표 단속'을 위해 부산 사위 집에 갔다는 60대 어르신…. 모두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원한 진실한 몸짓이라고 믿자.

하지만 대구경북과 호남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난 지역 대결 양상은 거북하기만 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차라리 0.25% 포인트 차이로 득표율이 반분된 대전이 부럽다. 후보들은 지역감정을 조장하지 않았지만 유권자들이 '알아서' 애정 혹은 적대감을 과시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이 같은 현상은 과연 바람직할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암담함이란!

다행히 대구에도 변화의 싹은 텄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18.67%)보다 더 높은 득표율(19.53%)을 받았다. 지난 총선에선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0%가 넘는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도 따스한 봄기운은 숨어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박 당선인도 '국민대통합'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챙기겠다고도 했다. 정말 이번만큼은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에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루라도 빨리 '지역감정은 종료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뜨길 고대한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언론인, 폴 존슨은 'Brief Lives'(이마고 펴냄)라는 저서에서 대학 동기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대처 총리는 박근혜 당선인의 롤 모델이다. 그가 기억하는 대처는 '머리 모양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지런한 여학생' '항상 심각한 사람'이다. 믿을 만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고도 했다. '수첩공주' 박 당선인과 닮은 모습이다. 그러나 폴 존슨은 호평 속에도 따가운 지적을 빠트리지 않았다. 주변에 기꺼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을 두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박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을 이룬 첫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면 잊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이상헌 정치부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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