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눈으로 덮여 있는 일본 나가노현(長野縣) 이다시(飯田市)를 찾은 것은 1천500여 년 전에 활동하던 대가야인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고분에서 출토된 대가야인의 인골은 이다시 고자료관에 보관돼 있었다. '잊혀진 왕국'이라고 불리며 존재조차 희미해져 가는 대가야의 유력 인물을 먼 이국땅에서 대면한다고 하니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의 인골은 7개의 작은 상자에 나뉘어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고분에서 발견될 당시 그는 두개골 오른쪽 부분과 이, 척추 아래쪽, 골반, 양 넓적다리뼈 등 전체 뼈의 30% 정도 남아있었다. 한국 취재진에게는 처음 공개되는 인골이었다. 직원이 인골을 하나하나 꺼내 하얀 종이 위에 펼쳐놓았지만 께름칙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반가웠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는 삶을 마치면서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수많은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대가야 인골의 정체는?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7년이다. 도로(국도 153호선) 개설을 위해 이다시교육위원회가 이다마츠가와강 북쪽 낮은 구릉에 있는 미조구치노츠카(溝口の塚) 고분을 발굴하자 문제의 인골과 수많은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다. 인골은 5세기 중'후반의 것으로 일부만 남아있었지만 상태는 양호했다. 발굴에 참여한 이다시가미사토고고박물관의 요시가와 유타카(吉川豊'53) 씨는 "무덤 석곽 안에 목재 관이 있었고 무덤 천장은 점토로 밀폐해놓았는데 천장이 무너지면서 인골이 흙속에 묻히는 바람에 풍화를 면했다"고 했다.
이 인골은 길이 65.5m의 대형 고분에 일본 특유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부분은 네모나고 뒷부분은 둥그런 형태가 결합한 고대무덤)에서 나왔기에 당연히 이 지역을 다스린 왕이나 수장일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교토대 영장류연구소가 인골을 정밀 조사한 결과 일본인의 인골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이 인골의 키가 너무 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5, 6세기 일본 고분에서 발굴된 남자 평균 키 159.11㎝보다 5㎝가까이 큰 164cm나 됐다. 그 옛날 한반도인들이 일본을 왜(倭)라고 부른 이유도 키 때문이었다. 이의 형태도 일본인들과 완전히 달랐다. 인골의 윗니는 삽 모양이었는데 한반도인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였다. 또 이의 크기를 측정해보니 5, 6세기 일본인의 평균 크기는 물론이고 현대 일본인보다도 컸다.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도 대가야산이었다. 철도, 철검, 철촉, 갑옷, 방패 등이 쏟아져 나왔는데 대가야 특유의 철모(鐵矛'쇠창)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완벽한 대가야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의 나이는 이와 뼈 상태를 미뤄 40세 전후로 추정됐다. 그 당시로는 노인에 가까이 지긋한 나이였고 큰 무덤에 묻힌 것에 미뤄 상당히 높은 신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는 "그 당시 일본에서 전방후원분이라는 큰 무덤에 묻히려면 한 지역의 왕이나 수장급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는 대가야에서 건너와 말을 사육하는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였을 것이다. 당시 일본사회에서 첨단문물인 말 사육법을 전해주는 집단의 우두머리라면 수장급의 대우를 받았을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그의 무덤을 인근에 있는 미야가이토(宮垣外) 고분군과 연계해 봐야 한다고 했다. 미야가이토 고분군에는 가야산 유물과 순장된 말뼈, 마구 등이 대거 출토됐는데 고분군의 주인들은 말 사육과 관련된 이주민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대가야에서 건너온 마사 집단의 우두머리는 미조구치노츠카 고분에 묻혔고, 그의 수하들은 바로 옆의 미야가이토 고분군에 묻혔다는 것이다. 이곳은 그 엣날 서쪽 산악지대와 동쪽 평야지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운반수단과 전투용으로서의 말이 무엇보다 필요했고, 말을 처음 전해주고 사육해주는 집단은 그에 걸맞은 훌륭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나가노현과 인접한 군마현(軍馬顯)에서도 대가야의 말과 관련된 유물이 대거 발견된 것도 비슷한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이다시교육위원회 주사 시부야 에미코(涉谷惠美子'49) 씨는 "이다시의 강 북쪽과 남쪽 구릉에서 고대 무덤이 발견되는데 한반도와 관련된 무덤은 강 북쪽에만 있다"며 "강 북쪽에 대가야인이 운영하는 말 목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흔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먼 이국땅에서 말을 키우다 이곳에서 삶을 마쳤다. 생활은 만족스러웠을지 모르지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너무나 애틋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들의 무덤도 없어졌고 도롯가에 외로이 표지판만 서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일본에 토기, 말, 문자를 전해준 그들의 공적까지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일이다. 비록 1천5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대가야인의 기상은 이 일본땅에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일본 나가노현 이다시에서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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