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꼰대님들 안녕하십니까. 우선 '꼰대'라는 비속한 말을 사용하는 연유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노인 또는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이지만 실제 의미는 '앞뒤 꽉 막힌 개념 없는 늙은이'라는 것은 잘 아시지요. 굳이 제가 이런 말을 쓰는 이유는 대선 기간 나온 한 전직 의원의 "꼰대들 '늙은 투표'에 인생 맡기지 말고 나에게 표를 던지는 거야"라는 글 때문입니다. 야당 대선 후보까지 지낸 분이 공개리에 이 말을 쓴 것을 보면 중년 또는 노년이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알 듯합니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을 쓰는 것이니 깊은 이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심기가 매우 불편하실 줄 압니다. 대선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노인들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하라'는 제안에 폭발적인 호응이 일고 '노인 참정권 박탈' 주장까지 나오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런 모멸은 한 역사학자의 "2030년에는 노인 암살단이 생길지 모른다. 노인이야말로 사회적 비용만 늘리는 잉여인간이 아닌가"라는 저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화려한 수사로 치장했지만 이 말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노인은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이란 것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7세기 초 스페인 세비야의 대주교 이시도루스는 노년은 '가장 폭력적인 주인'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고 했습니다. 그 폭력적인 주인은 '쾌락과 욕망'입니다. 노인이 되면 쾌락과 욕망에서 벗어나 삶의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노년의 역사' 팻 데인, 팀파킨 등) 이는 꼰대의 자기 합리화가 아닙니다. 현대 과학은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심리학자 셰리 윌리스와 그녀의 남편 워너 샤이가 수행한 장기 연구입니다. 1956년부터 40년 이상 20∼90세 사이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건강한 성인 남녀 6천 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이 연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노년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버린 것입니다. 복잡한 인지 기술 측정에서 '지각 속도'와 '계산 능력'을 제외하고 '어휘' '언어 기억' '공간 정향(定向)' '귀납적 추리' 등 나머지 전 부문에서 최고의 과제 수행 능력을 보인 나이는 40∼65세 사이였습니다. 또 실험 대상자들은 20대였을 때보다 중년이 되었을 때 더 높은 수행 능력을 보였습니다. 결론은? 나이가 들면서 인지 속도는 느려지지만 패턴을 인지하고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중년의 뇌가 가장 탁월하다는 것입니다.('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바버라 스트로치)
이번 대선에서 2030을 '멘붕'에 빠뜨린 5060의 반란은 이런 노년의 지혜의 분출이었습니다. '1대 99'를 외치며 편을 갈라대는 분열 세력,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하자'는 사이비 경제 이론으로 젊은이를 꼬드기는 포퓰리스트들의 혼돈의 굿판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반란'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린 '환국'(換局)입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5060이 보수화됐다고 합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보수라는 말에 덧씌워진 '수구'란 모멸적 의미를 감안하면 가당치 않은 매도입니다.
꼰대님들! 당신들은 식민지 지배와 민족상잔, 절대 빈곤의 질곡을 넘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세계 유일의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내핍과 고통의 결실은 지금 2030들이 향유하고 있지만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노후 빈곤이란 암울한 미래입니다. 그럼에도 '더 퍼 주겠다'고 한 야당의 유혹을 뿌리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이번 대선에서 당신들의 선택은 꼰대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래, 나 꼰대다. 어쩔래!'라고 외친 커밍아웃이었습니다. 이는 어른으로서 어른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들의 할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30을 넓은 가슴으로 품으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꾸준히 설득하는 일입니다. 분열 세력의 사탕발림과 껍데기 진보의 허위 의식에서 깨어나도록 말입니다. 지금 2030은 당신들에게 적나라한 적의를 표출하고 있지만 당신들은 그들과 똑같이 그들을 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들의 자식이고 조카이며 손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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