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漢) 고조 유방과 명(明) 태조 주원장은 개국 황제라는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등극 후 치세에 걸림돌이 될 만한 공신들을 철저하게 숙청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일등 공신이었던 한신(韓信)을 제거함으로써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을 인구에 회자되게 했다. 주원장도 개국공신 호유용과 이선장 등을 역모로 몰아 구족을 멸하고 관련자 수만 명을 함께 죽였다.
그러나 탕화(湯和)만은 스스로를 억제하며 적시에 낙향해 자신과 가족을 보전할 수 있었다. 유방의 공신인 장량(張良)도 주군이 보위에 오르자 몸을 낮추고 물러남으로써 화를 면했다.
조선 제3대 왕인 태종과 그의 손자인 세조는 똑같이 정변을 통해 보위에 올랐지만 공신을 처결하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태종은 권력을 장악한 뒤 왕권 강화를 위해 공신과 외척을 인정사정없이 척결했지만, 세조는 한명회를 비롯한 공신들의 전횡을 방관하는 바람에 조선왕조에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는 지적도 있다.
왕조시대의 이 교훈은 민주 사회인 우리 현실에서도 엄연하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의 실패는 가신과 측근을 감싸고 돌다가 비롯된 측면이 크다. 부적절한 공신들을 제때에 정리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코드 정치'니,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라인'이니 하는 신조어들이 까닭 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자고로 권력 교체기에는 공신(功臣)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천하를 놓고 쟁패를 다툴 때와 권력을 쟁취하고 난 후의 주군과 공신의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개인적인 의리나 인간적인 덕목 차원에서는 부정적인 처사로 보이겠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최고 권력자에게는 토사구팽이 '필요악'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주원장이 수족 같은 공신들을 처단하면서 남긴 말이 있다. "이제는 공신의 공로보다 백성들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이른바 팽도(烹道)도 치도(治道)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일등 공신들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하나 둘 짐을 싸서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이 같은 공신들의 거취는 5년 전 이명박 당선인 시절과도 비교가 되는 일이어서 고무적이다. 구팽(狗烹) 없이도 치국(治國)이 이루어질 수 있음은 더 큰 국리민복(國利民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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