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고동 울어 울어 연락선은 떠난다/잘 가소 잘 있소 눈물 젖은 손수건/진정코 당신만을 진정코 당신만을/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샘키면서/떠나갑니다 (아이 울지 마세요)/울지를 말아요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1절
여러분께서 너무도 잘 아시는 이 노래의 작곡자가 바로 김해송이란 사실은 모르셨지요? 193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식민지 백성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가련함 그 자체였습니다. 쉬느니 한숨이요, 내뱉느니 탄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일본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종일토록 서성대는 부산 항 부두에는 이별의 눈물과 쓰라린 애환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 애환의 광경을 이 노래만큼 잘 표현한 노래는 그리 많지 아니합니다. 당대 1급의 작사가 박영호 선생이 노랫말을 붙였고, 곡조의 예술성을 김해송이 맡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노래는 삼천리 반도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가슴속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쓸어내렸습니다. 한 잔 술에 취하여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내일의 삶에 대한 염려가 새로 솟구치곤 했던 것입니다.
오케레코드사에서 활동하던 김해송이 콜럼비아사로 옮긴 것은 1938년도의 일입니다. 이 한 해 동안 무려 32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하거나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김해송이 만요(漫謠)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후로 발표했던 김해송의 대표곡 제목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옵빠는 풍각쟁이''팔도장타령''나무아미타불''다방의 푸른 꿈''코스모스 탄식''우러라 문풍지''화류춘몽''잘잇거라 단발령''어머님 안심하소서''요즈음 찻집''경기 나그네''고향설' 등 유명곡들이 참으로 많기도 많습니다. 이 노래들은 모두 크게 히트를 했던 가요곡들입니다.
이 시기 김해송의 삶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은 가수 이난영과의 결혼입니다. 김해송은 아내를 위해 재즈풍의 노래 '다방의 푸른 꿈'(조명암 작사'김해송 작곡'이난영 노래, 오케 12282)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면서 처남인 이봉룡에게 작곡기법을 가르쳐 작곡가로 성공을 시켰습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김해송은 KPK악단을 조직하여 새롭게 변화된 세상에 기민하게 대응합니다. 해방기념가요 '울어라 은방울'도 발표해서 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김해송은 북으로 끌려올라가 영영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지요. 이처럼 전쟁은 모든 현재성을 소멸과 망각의 구렁텅이로 매몰차게 던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김해송 선생의 출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김해송이 작곡한 작품을 활용해서 제작한 도합 8편의 영화특별전이 열렸습니다. 그 전시회의 이름은 '가문의 영광:김해송, 이난영, 그리고 김시스터즈'였습니다. 한편 김해송은 만요(漫謠)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지요. 만요란 1930년대의 이른바 모던보이, 모던걸의 정서가 독특하게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의 외모와 생각, 생활습관 등이 만요 작품 속에 무르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서구적 분위기로 일관하지 않고 오히려 전통적인 요소와 외래적인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켜 전체구성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질적 풍모를 추구하던 청년기문화에 대한 시대적인 풍자와 해학이 살아서 넘실거립니다. 천재적인 작곡가 김해송은 스스로 작사, 작곡한 가요작품을 가수로서 직접 부르기까지 하면서 한 시대의 문화적 첨단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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