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화하는 프레젠테이션쇼…대세는 영상+발표

페차쿠차 대구 주최자 권오준
페차쿠차 대구 주최자 권오준'이상훈'김정한'이우진 씨.(왼쪽부터)

이달 20일 오후 8시 대구 동성로의 한 클럽. '불금'(불 타는 금요일)도 아닌 평일 저녁에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화려한 미러볼 조명 대신 빔 프로젝터가 대형 스크린을 비추고 있었다. '페차쿠차 대구'라는 문구가 떴고, '20 Images X 20 Seconds'라는 문구가 이어졌다. "무슨 뜻일까?" 궁금해 하던 찰나에 행사는 시작됐다.

◆페차쿠차를 아시나요?

첫 번째 순서는 대구에서 '브래킷'이라는 독립잡지를 만들고 있는 외국인 그레그 레이첵과 크리스 코트 씨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잡지를 소개했다.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속도감 있게 전환됐다. 발표자들은 그에 맞춰 간단명료하게 코멘트를 했다. 6분여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흘렀고, '아이디어(idea)가 있다면 행동(action)하라'는 인상적인 문구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영상은 종료됐다. 그레그 레이첵 씨가 웃으며 한 마디 했다. "'20의 법칙'을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네요. 하지만 참 매력적입니다."

페차쿠차는 2003년 일본에서 시작돼 현재 세계 600여 개 도시에서 진행 중인 프레젠테이션 쇼를 가리킨다. 일본어로 '재잘재잘'이라는 뜻으로 잡담처럼 짧고 무겁지 않은 형태로 빠르게 진행되는 파티 형식의 발표회다. 발표자는 '20의 법칙'만 지키면 된다. 20장의 영상으로 1장당 20초씩, 400초(6분 40초) 시간 안에서 자유로운 주제로 연단에 설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참가한 발표자들은 다채로운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펼쳤다. 일단 '대구' 주제가 많았다. 스케이트보더 신현기 씨는 '대구에서 스케이트보드 타기'를 주제로 국채보상공원을 중심으로 한 대구 도심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부흥을 피력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보한 씨는 대구의 다양한 간판 사진을 보여주며 '컬러풀 대구의 허상'을 조목조목 따져 박수갈채를 받았다.

홍보도 가능하다. 대구 빅버드 패러글라이딩 스쿨 소속 이재학 씨는 발표 마지막에 "오늘 프레젠테이션을 관람한 분들께 패러글라이딩 할인 혜택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냥 수다를 떨어도 된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최훈락 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운을 띄운 뒤 일상 속 사진들을 스크린에 띄워 가볍게 수다를 떨었다.

이외에도 영남이공대 실내디자인과 학생들이 나와 작품 발표회를 했고, 대경대 미술학과 강사 레미 뒤프라 씨는 미리 보지 않은 영상을 띄워 놓고 즉흥 설명을 하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 실험'을 펼쳐보였다.

페차쿠차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2007년쯤. 이때만 해도 건축가'디자이너들이 업무에 활용하거나 예술가들의 작품 발표 도구 정도로만 쓰였다. 그러던 것이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대구에서 페차쿠차를 첫 개최하는데 힘을 모은 4인방이 있다. 대구경북 출신 권오준(36)'이상훈(37)'김정한(35)'이우진(37) 씨다. 2007년 일본 유학 시절 페차쿠차 행사를 경험한 건축가 이우진 씨는 "발표자와 청중 모두 굉장히 자유롭게 프레젠테이션 문화를 즐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하던 경직되고 형식적인 프레젠테이션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후 이우진 씨와 디자이너 김정한 씨가 "페차쿠차로 대구의 경직된 도시 분위기를 바꿔보자"며 뜻을 모았다. 지역에서 문화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작가 권오준 씨가 취지에 동의해 합류했고, "클럽 공간을 문화 생산 공간으로 변모시키겠다"며 클럽 파샤 사장 이상훈 씨가 공간을 제공했다.

이들은 페차쿠차 대구 행사를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다음 발표회는 2월 26일로 계획했다. 페이스북 'Pechakucha Daegu'(페차쿠차 대구) 페이지 등을 통해 참가는 물론 후원 문의도 받고 있다.

◆스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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