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日천황제, 위정자들 정치적 이용에 '한 혈통' 이어져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건국부터 이어져 온 한 혈통

위정자들 필요에 의해 이용

일본사 특수성에 존속 가능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김후련 지음/ 책세상 펴냄

만세일계(萬世一系). 일본어로 '반세이잇게이'다. 일본 천황(天皇)가가 건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는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이 근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선택한 '천황'이라는 존재에 주목한 책이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주역들은 천황을 근대화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천황제 신화 만들기에 골몰했다. 일본 신화를 기반으로 한 신도(神道)를 국가 종교로 삼아 보호 육성한 것이나 신사(神社) 건립에 열성적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일본 역사를 통틀어 천황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극히 한정된 시대에 불과하다. 그런 천황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낸 것이 메이지 정부다. 단지 신화에 근거할 뿐인 천황제를 이데올로기화한 메이지 정부의 목적은 제국주의 시대 천황을 정점으로 국가 시책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신민(臣民)을 만드는 데 있었다.

일본처럼 근대까지 고대의 신화 정신이 살아남은 경우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단 한 번의 역성혁명(易姓革命)도 없이 한 혈통으로 이어져왔다는 천황가가 실재하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저자는 8세기에 쓰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속 천황 신화 분석을 발판으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이룬 '일본 신화'와 '신도' 그리고 '천황'의 삼각 구도를 해부한다. 이는 일본 신화가 일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형되어왔는지, 신화와 역사의 상호 침투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위정자들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신화를 이용해왔다. 따라서 일본 신화를 시대적 흐름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사실 천황이 실제로 전국을 통치하지 못했던 시대에도 천황제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본사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전국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막부의 쇼군들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보다 천황의 권위를 통해 다른 무장과 차별화된 관직을 얻어 그들 위에 군림하는 편을 택했다. 천황제는 한마디로 정치적 이용 가치라는 측면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부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메이지 정부는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라는 천황 신격화 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우선 막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 머물러 있던 천황의 존재를 각인하기 위해 천황의 전국 순행을 실시하고 역대 천황릉을 정비했다. 만들어진 전통으로서 근대의 천황제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메이지 정부는 1889년 메이지 헌법 제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와 제3조 "천황은 신성불가침하다"를 통해 일본은 천황 국가임을 천명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이후 일본 군부는 천황을 등에 업고 천황의 군대인 황군이 벌이는 전쟁은 성전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한다.

이처럼 저자가 근대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목한 이유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풍에 가세한 일본의 침략 전쟁이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드리운 음험한 국군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힌 일본 우익들의 준동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이 주도하고 있는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다. 새역모에서 만든 교과서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는 전전의 신화적 역사관을 현대사에 되풀이하며 일본 사회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다.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근간인 신화와 이를 재창조한 근대의 메커니즘이 우익들을 통해 현대에도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577쪽. 2만3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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