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눈 내린 다음 날의 풍경

지난주 금요일(12월 28일) 대구에 내린 폭설은 예상치 못한 유쾌함을 선사했다. 적설량 12.5㎝로 12월 중 대구에 내린 눈으로는 1952년 12월 9일(23.5㎝) 이후 최대치였다고 한다. 아침에 펑펑 내리는 눈을 발견했을 때는 한숨부터 나왔다. 그러나 이후는 전혀 달랐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토요일) 오전 경북 경산시 남천면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눈길 위에서 운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으나 가고 오는 내내 기분은 유쾌했다. 폭설이 그친 지 20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주요 도로는 대부분 제설 작업이 이루어져 있었다. 달구벌대로는 물론이고, 유니버시아드로, 삼성현로, 경산과 청도를 잇는 옛 국도 모두 자동차 운행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도로 상황을 접하고 '대한민국 참 선진국이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시내버스를 탈 일이 있었다. 버스에서 바라본 대구 시민들 역시 자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609번 시내버스 기사는 정류소에 정차할 때마다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어설프게 달려오는 손님들을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다. 버스에 오른 손님들은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기사와 손님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유쾌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영업소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주택도 자기 집 앞의 눈을 한쪽으로 치운 덕분에 골목길을 걷는 데도 별 불편이 없었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의 주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관리 아저씨들을 도와 단지 안의 눈을 치웠다. 부모들이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자녀들과 함께 눈을 치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멋졌다. 자녀 교육이란 저런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골목길에 접어든 자동차들은 속도를 줄여 반쯤 녹은 눈이 보행자들에게 튀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 모든 장면은 폭설이 내린 다음 날인 12월 29일 하루 동안에 목격한 것들이다.

문득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간 중에 대구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시민정신이 떠올랐다. 당시 대구 시민들은 그야말로 일류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이번 폭설 때 대구 시민들은 분명하게 확인해 주었다. 눈 내린 다음 날의 즐겁고 자랑스러운 풍경이었다.

조두진 문화부차장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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