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호텔방에서 '4조 증액 심사' 뚝딱…예결위에 비판 쏟아져

회의 없는 계수 조정소위, 속기록 작성도 하지 않아…장윤석위원장 "조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새해 예산안을 늑장 처리해 놓고도 '수고했다'는 차원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위원장 장윤석'경북 영주) 소속 여야 의원들이 '외유'에 나선 데 대해(본지 2일자 9면 보도) 비판의 목소리가 뜨겁다. 대선 정국에서 여야 모두 '민생'(民生)을 최우선 과제로 외친 것과 반대로 대선 직후 '혈세 낭비형' 해외 출장에 나선 것도 그렇지만, 폭설과 한파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중남미, 아프리카 등 '따뜻한 나라'로 예산심사 시스템을 연구하러 갔다는 데 대해서도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외유 파문'에 휩싸인 예결특위는 특히 2013년도 예산안 증액심사를 하면서 한 차례도 공식 회의를 열지 않아 속기록 자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회 사무처가 작성한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 증액 및 감액 심사일자'에 따르면 계수조정소위는 이번에 4조3천700억원의 증액을 심사했는데 속기록을 작성하지 않았고, 반대로 지난해 11월 23일부터 12월 4일까지 열린 여섯 차례 계수소위 속기록은 모두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감액은 철저하게, 증액은 관대하게 집행해 예산의 투명성을 담보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예결특위의 2013년 예산안은 정치권에서 '밀실 예산' '호텔 예산'으로 회자하고 있다.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김학용,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은 지난해 12월 21일 계수조정소위의 증액심사권을 위임받으면서 국회가 아닌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과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계수조정 작업을 했다. 각 지역구의 '쪽지'가 수천 건 씩 쇄도한 것도 국회를 떠난 무방비 상태였기에 가능했다는 관측이다.

예결특위 소속 여야 의원 9명은 '예산심사 시스템 연구'라는 명목으로 A팀(장윤석 김재경 권성동 안규백 민홍철)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멕시코~코스타리카~파나마 등 북중미로, B팀(김학용 최재성 김성태 홍영표)은 케냐~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아랍에미리트를 거치는 아프리카행을 택했다. 팀당 7천여만원씩 1억5천만원이 항공료와 체류비 등으로 쓰인다.

국회가 '1월 휴지기'에 들어가면서 보건복지위, 교육과학기술위, 정무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농림수산식품위, 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의원들도 해외 시찰과 사례연구를 위해 외유에 나섰거나 떠날 예정이어서 좀처럼 국민적 반감 정서가 숙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 중순 아시아태평양지역 4개국 시찰을 준비 중인 예결특위 C팀은 출장을 일단 보류한 상태이며, 현재 시찰 중인 A, B팀도 서둘러 귀국할 가능성도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일 뒤늦게 "국민 정서를 살피지 못한 것은 유감이며 사려 깊지 못했다"고 사과했고,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불필요한 외유성 출장은 삼가기 바란다"며 내부 단속에 나섰다. 현재 멕시코에 체류 중인 장 위원장은 4일 오전 매일신문과 통화에서 "이번 해외 일정은 예산결산특위가 본격 가동되기 전에 잡힌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의원외교 차원"이라며 "나라 간 공식적인 약속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도리이지만 최대한 일정을 당겨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가급적 조기에 귀국하도록 하겠지만 관계국 간 협의와 비행기 티켓 등 몇 가지 난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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