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꿔줘!" 유통업계 '정여사와의 전쟁'…블랙컨슈머들 기승 골머리

업체 이미지 훼손 우려 부당요구 알면서도 들어줘…최근 법적 제재로 맞대응

지난달 수성구 한 대형마트에서 손님 A씨가 라면 한 상자를 들고 와 환불을 요구하며 소란을 피웠다.

A씨는 "4년 전 이곳에서 사간 라면을 구매 당시 1봉지를 먹고 맛이 없어 집에 보관했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영수증도 없었고 더욱이 라면은 유통기한도 지나 대형마트 측은 환불을 거절했다.

그러자 A씨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매장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환불이나 보상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빈번하게 있다"며 "보상 비용도 비용이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려 매장 영업에 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블랙컨슈머 때문에 유통업계와 제조업체들의 고민이 늘고 있다. 블랙컨슈머 문제가 심각해지자 최근에는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판결도 나왔다.

보상을 목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들은 업체들의 영업 행위를 방해해 기업에 피해를 준다. 그간 업체들이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들에게 될 수 있으면 보상을 해줬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3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3.4%가 블랙컨슈머로부터 악성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피해기업 10곳 중 7곳은 기업이미지 훼손 등의 우려로 부당한 요구를 그대로 받아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블랙컨슈머로 골치가 아픈 곳은 유통업체들이다. 친절한 서비스라는 유통업체들의 마케팅을 역이용해 생떼를 부리고 보상을 받아내는 사례가 많다.

대구지역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런 블랙컨슈머는 매년 20%가량 늘고 있다. 가장 빈번한 블랙컨슈머의 형태는 소비자의 실수나 혹은 고의로 상품을 망가뜨리고 나서 환불이나 교환을 요청하는 경우다. 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에서 책임을 진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한 백화점에는 5년 전에 산 가방을 들고 와 가방이 해지고 로고가 흐릿해졌다며 새 제품으로 교환해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직원이 사들인 지가 너무 오래됐고 고객의 사용 부주의 때문인 것이라 교환이 어렵다고 하자 소비자 단체에 신고하겠다며 소리를 질러댔고, 결국 이 고객은 백화점 측으로부터 보상 차원으로 10만원권 상품권을 건네받은 후에야 돌아갔다.

유통업체 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들도 많다. 운전 부주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고 나서 직원들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사고가 났다며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거나 비가 오는 날 백화점에서 나눠 준 우산 비닐이 찢어져 명품 가방이 젖었다며 새 제품으로 교환해 달라는 손님도 있다.

한 백화점 직원은 "정당한 이유로 환불을 거절해도 폭언이나 욕을 하고 심지어는 조직폭력배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동원해 매장에서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업체를 괴롭혀 보상을 요구하며 피해를 접수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며 "업체가 보상을 해주면 그 피해는 오히려 일반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셈이기 때문에 블랙컨슈머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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