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뱀띠 해, 우리곁의 뱀] 그 많던 뱀은 어디 갔을까

뱀탕집'뱀술병 사라졌지만 불법남획 수난 여전

농촌 출신인 50대 이후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릴 적에는 정말 뱀이 흔했는데 요즘은 잘 볼 수 없게 됐다"고 회상한다. 이들은 "우물가에 툭하면 물뱀, 꽃뱀들이 있었고 집안 장독대 근처와 담벼락에는 구렁이, 논둑과 산에는 독사인 살모사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동네 누구가 뱀에 물렸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뱀을 볼 수 없다. 산 속에 풀과 나무가 울창해져 뱀이 많이 번식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등산객이 뱀에 물렸다는 소식은 가끔 신문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됐다. 뱀 중 구렁이는 우리 민족과 가장 친숙한 뱀이다. 조상들은 뱀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어도 구렁이가 집에 들어오면 재물이 들어올 것이라고 기뻐했을 정도다. '재물의 신'으로 불리며 구렁이가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집안에 살던 구렁이는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아먹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았던 구렁이가 그릇된 보신문화로 마구잡이로 포획돼 요즘은 거의 사라져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보호받고 있다.

◆무차별 포획

뱀이 사라진 이유는 다양하다. 뱀 밀렵이 가장 큰 원인이다. 겨울잠 자러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대량으로 밀렵 남획하는 현장이 환경단체에 적발되곤 한다. 생태계 변화도 주요 원인이다. 농촌에 농약을 많이 살포하면서 뱀의 먹이사슬이 무너지는 등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양서'파충류연구소 심재한 소장은 "뱀은 농사에 피해를 주는 참새'쥐'두더지 등을 잡아먹기 때문에 사람에게 이롭기도 하고, 해충을 잡아먹는 개구리를 잡아먹어 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뱀은 독수리와 너구리, 멧돼지의 먹이가 되는 등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며 "지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밀렵꾼들은 생태계가 잘 보전된 민통선까지 몰려가 1급 멸종위기종인 구렁이까지 남획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멸종위기종 불법 포획'유통을 강력히 단속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말 신규로 지정된 멸종위기종 57종을 발표하고 국민 홍보와 밀렵행위 벌칙조항도 강화했다.

◆20여 년 전 달성공원 앞 뱀탕집 즐비

뱀이 사라지면서 보신문화의 대표격인 뱀탕집도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띄엄띄엄 눈에 띄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서 뱀탕집이 호황을 누렸다. 대구에도 달성공원 앞에는 뱀탕집이 즐비했다. 뱀집마다 뱀술 유리병이 진열돼 있었다. 또 5일장터마다 어김없이 뱀 장수가 등장해 독특한 목소리로 구경꾼을 모으기도 했다. 뱀탕집, 보신탕집 등이 도심 대로변에서 사라진 것은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혐오식품'에 대한 시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뱀탕과 보신탕이 세계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건강원으로 불리는 뱀탕집에서 뱀을 불법 유통하는 행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면서 처벌도 강화했다. 상습 밀렵자에 대해서는 징역형, 밀렵신고 포상금 지급기준도 상향시키면서 뱀탕집은 대로변에서 하나 둘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뱀 사육 허가 농장

우리나라에도 정식 뱀 사육장이 있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가자 뱀 농장'이 최초로 허가받은 뱀 사육장이다. 동물원을 제외하면 국내 첫 뱀 양식장이다.

이 농장 대표 김창모 씨는 "우리나라는 가축은 키워서 요리해 먹지만 뱀은 사육할 수 없어 그동안 자연에서 잡아들였다"며 "멸종되어 가는 자연 속의 뱀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에서 환경법을 만들어 사육하는 것을 허가했다"고 한다. 그는 뱀이 좋아하는 먹이'자연환경 등에 정통한 '뱀 박사'다.

그는 인가와 떨어진 야산 기슭에 뱀 사육장을 갖추고 뱀 먹이용 개구리와 '뱀 닭'(죽은 뱀에서 나오는 구더기를 먹여 키운 닭) 사육장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교배'산란을 통해 얻은 새끼 뱀에게 애벌레와 미꾸라지 등을 먹여 기른다. 그는 보양식 업소에 뱀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뱀 양식 확대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뱀 닭'을 판매하며 농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 씨는 "멸종 위기의 뱀을 살리는 길은 뱀을 대량 양식해 야생 뱀을 잡는 땅꾼들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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