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국서 온 천연두, 의주·평양 찍고 서울 덮쳐

인도 풍토병 콜레라 유럽 거쳐 인도차이나·中·조선·일본으로

충남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에서 2003년 2월 열린
충남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에서 2003년 2월 열린 '마마배송굿'에 쓰인 짚말. 국립민속박물관 사진.

조선의 전염병은 외국에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 대유행한 전염병은 북중국에서 요동반도를 거쳐 조선 북쪽으로, 산둥지방에서 황해를 건너 조선 서해안 지역으로 전래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조선을 괴롭힌 질병 중에 두창(천연두)이 있다. 두창의 유행기록은 40여 차례가 넘는다. 한 번 유행할 때마다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백성들에게 두창은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떠받들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두창은 다른 전염병처럼 나쁜 귀신 때문에 생긴다고 믿었다. 전해오는 풍속에도 두창신(痘瘡神)을 유난히 중히 여겼다. 두창신은 오랑캐 땅에서 온 귀신, 즉 호귀(호구)마마님이었다.

"서쪽에서 들어온 병이 무섭고 아픈데 약을 써도 영험이 없고 의원도 힘을 쓸 수가 없으니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신께서 보살펴서 도깨비가 있으면 막아주시고 귀신이 있으면 쫓아내어 주시기를."(광주목사 김겸의 제별신 축문 중에서) 두창은 서쪽, 즉 중국에서 들어온 병이었다.

민간신앙에 남아 있는 두창신 이야기에도 전염병의 전파 경로가 남아 있다. 호구마마는 중국 땅, 의주, 평양, 서울, 우리 집, 우리 아이에게 왔고, 가는 길은 거꾸로 우리 아이, 우리 집, 서울, 평양, 의주, 중국 땅이다.

'배로 오신 호구마마님에게는 짚으로 만든 배를 대령하고, 말을 타고 오신 마마님은 싸릿대로 만든 말을 대령하여 올린다.' 무당이 호구마마를 돌려보내는 '마마배송굿'을 할 때 이런 내용을 담은 노래를 한다.

콜레라는 인도에서 처음 풍토병으로 시작해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817년에 벵골 지방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이듬해 12월 인도 본토에서 스리랑카 섬으로, 1819년에는 유럽까지 전파됐다. 같은 해 동쪽으로도 퍼지기 시작해 인도차이나에 퍼지고, 1820년 중국에 이른 콜레라는 1821년 난징과 베이징 등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급기야 1821년(순조 21년) 여름 요동반도를 거쳐 압록강을 넘어 7월 하순 평양에 들어온 뒤 파죽지세로 황해도, 중부지방을 거쳐 경상도까지 뒤덮었다. 콜레라는 1822년 8월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일본 전역에 걸쳐 수많은 사망자를 냈다.

제1차 대유행기(1821년)에 조선의 콜레라 사망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 지역별로 수만 명에서 13만여 명이 숨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방 관리들이 축소 보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1807~1835년 사이 조선 인구가 100만 명가량 줄어든다. 제1차 콜레라 사망자 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1천만 명에 이르렀다는 점에 비춰볼 때 전체 백성의 10분의 1이 콜레라로 숨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열 명 중 한두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했다. 치사율이 80~90%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콜레라 대유행은 1859~1860년이며, 이때에도 50만 명가량이 숨졌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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