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물동. 짙게 선팅 된 주차 차량 안에 남성 4명이 앉아 있었다. 차 안에는 노루발못뽑이(속칭 빠루), 드라이버 등 장비가 쌓여 있었다. 이들은 대구경찰청 생활질서계 풍속업소광역단속'조사팀으로 불법 유흥업소와 사행성 게임장, 성매매업소 등을 단속한다.
단속팀은 이날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장이 영업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잠복근무를 했다. 잠복과 첩보가 없으면 영업 여부조차 알아내기 어렵다. 곳곳에 CCTV를 설치해놓고 업소 내부에서 바깥쪽을 관찰해 손님을 들이기 때문이다. '문빵'이라고 불리는 문지기까지 앞세워 놓는다. 이 때문에 단속을 나설 땐 게임장 손님을 가장한 허름한 옷차림이 필수다. 트렁크에 실린 각종 장비도 잠근 문을 부수고 들어가기 위한 준비물이다.
첩보를 입수하더라도 불법 행위가 있는 현장을 포착하는 게 필수. 주차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시동을 끄고 내비게이션 등 내부에서 불빛이 새어나갈 만한 기기의 전원 차단이다. 바깥에서 인기척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추운 날씨에도 히터를 틀 수 없다. 오랫동안 시동이 켜진 차량은 의심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단속 2팀 류승완 경장은 "겨울엔 추워도 히터를 켤 수 없고, 여름엔 더워도 에어컨을 틀기는커녕 창문조차 열 수 없다"고 털어놨다.
주차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기도 어렵다. 의심스러운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차해야 캠코더를 통한 녹화나 차적조회가 쉽다. 자리를 잡고 잠복을 시작한 지 20분쯤 뒤 한 사내가 차 가까이 다가와 차량에 적힌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 차를 이동시켜 달라고 했다. 내려서 주변을 서성이거나, 업소와 가까운 위치에서 차량을 반복해 이동하다가는 업주나 종업원들이 잠복 중인 것을 눈치 챌 수도 있다.
4명의 팀원은 불법 영업으로 의심되는 업소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님의 왕래가 있으면 일단 영업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속팀이 살피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업소 직원들은 손님을 가장해 게임기 일부를 이동시키거나 뒷문 등을 이용해 도망치기도 한다. 이후 주변에 설치돼 있던 CCTV를 걷어내고 기기 전부를 옮기는 등 '야반도주'를 시작한다. 이들이 새로운 장소에서 영업을 개시하면 단속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단속 2팀 배기훈 팀장은 "섣불리 단속했다가 현장을 포착하지 못하면 헛수고가 되기 때문에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타이밍'을 결정한다"며 "어렵사리 획득한 정보라도 적발해서 검거와 압수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잠복을 시작한 지 6시간이 지났다.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고, 배가 고파도 허기를 채울 수 없다. 교대로 식사하고 와서 다시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소화불량은 늘 따라다닌다. 외진 곳을 찾아 급하게 볼일을 해결하는 때도 많다.
불법 영업 의심 업소는 단속을 피해 한 달에 몇 번씩 영업장소를 바꾼다. 이 때문에 업소가 성업 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확인을 하려고 해도 영업하지 않는 날이 수두룩하다. 이날도 단속팀은 한 곳도 단속하지 못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경찰청은 지난해 법규를 위반한 풍속업소 2천81곳을 단속해 업주 2천132명을 처벌했다. 유형별로는 게임제공업(오락실)이 445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노래연습장 471건, 키스방 등 신종변태업소 249건, PC방 182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경찰청 생활안전과 생활질서계 박권욱 계장은 "과거와 달리 전원공급만으로 버전이 바뀌는 등 정상 기기기를 개'변조하는 방식으로 불법 영업의 형태가 진화하고 있어서 장시간 실태를 파악해 증거를 확보해야 단속이 가능하다"며 "한정된 인원이지만 꾸준히 단속활동을 벌여 불법 게임장 영업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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