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개천의 용 타령

'개천에서 용 못 나온다'고 아우성이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라 부모'조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신분 사회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정된 사회일수록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다. 불안정한 사회에서도 개천에서 용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은 그만큼 개천에서 용 나오기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인류 문명사는 '개천에서 용 나기를 거부한 과정'이다.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고 다른 동물보다 강한 위치를 점한 배경에는 '개천에서 용 나기를 거부해 온 과정' 즉,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먼 선조들의 지혜와 지식 기반 위에 조금씩 성장해 온 역사의 힘이 있다. 인간은 오직 사람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선조가 이룩한 모든 지식과 지혜와 업적과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인생을 대충 살다가 간 집안의 자식과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일심으로 노력해서 집안을 일구고 자식을 뒷바라지한 집안의 자식이 같을 수는 없다. 삶에 대한 부모의 태도와 무관하게 자식이 똑같은 출발선에 선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공평하다. 그런 식이라면 누가 알뜰살뜰 자식을 돌보겠는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용'은 상대적 용이다. 남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하고, 잘살아야 한다. 그러니 결국 누가 용이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는 미꾸라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심으로 노력한 사람의 자식이 미꾸라지가 되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사람의 자식이 용이 된다면 그야말로 불공평한 처우일 것이다.

용과 개천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예전에는 가난한 집안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고 반듯한 직장을 구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했다. 요즘은 명문대 출신 전문직도 자신을 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안 나온다'는 사회구조에 대한 푸념은 기실 기대 욕심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꼭 여의주를 물어야 용은 아니다. 자기 일을 잘하고 보람을 얻는 것이야말로 용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를 바라는 것은 '공짜 바라는 마음'이다. 용을 기대한다면 넓고 깊은 못을 파고, 물을 가두는 데 힘써야 한다. 그래야 내 다음 세대에서라도 용을 기대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오는 까닭은 개천 탓이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개천에서는 미꾸라지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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