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여자비-안현미(1972∼)

아마존 사람들은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여자비라고 한다

여자들만이 그렇게 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울지 마 울지 마 하면서

우는 아이보다 더 길게 울던 소리

오래 전 동냥젖을 빌어먹던 여자에게서 나던 소리

 

울지 마 울지 마 하면서

젖 먹는 아이보다 더 길게 우는 소리

오래 전 동냥젖을 빌어먹던 여자의 목메이는 소리

-시집 『이별의 재구성』(창비, 2009)에서

'∼이라고 한다'는 이 시의 화법을 빌려 나도 거들 말이 있다. '자비'(慈悲)라는 말이다. '慈'의 상형(象形)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하고, '悲'의 상형은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마른 젖을 물리며 피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 모순된 글자들을 한데 묶어 최선의 사랑이라고 한다.

기쁨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슬픔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도망치지 않는다. 세상 누구도 어느 누구의 아픈 몸을 대신 아파 줄 수는 없지만 같이할 수 있어야 한다. 배고픈 아이를 보거든 먹을 것을 찾아주고,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거든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것이 자비다.

그러나 이 시처럼 세상에는 배고파서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안고 아이보다 더 길게 우는 어미가 있다. 이 아픈 사랑을 외면하는 기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慈'와 '悲'는 늘 말로만 하나로 묶여 있지 현실은 따로국밥이다. 이 시에서처럼 아이만이라도 배가 부를 수 있다면 자신은 굶어 죽어도 좋은 어미의 혀를 씹는 슬픈 사랑만이 외롭다. 여자비, 여'慈悲'? 혹독하게도 내 눈에는 여전히 여자'悲'로 보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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