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밑에 국내 최대 광산촌이었던 태백에 다녀왔다. 하루에 한 번 운행되는 무궁화호 눈꽃열차는 눈으로 덮인 산과 들을 네 시간을 달려 철암역에 도달했다. 우리나라 석탄의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흔적들은 대합실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의 겨울나기 준비는 제일 먼저 수백 장의 연탄을 사재는 일이었다. 한겨울 아랫목을 데워주는 건 유일하게 연탄불밖에 없었으니 제일 중요한 것일 수밖에. 지금이야 가스와 지역난방 등 각종 전기제품들이 난방을 대신하고 있으니 참으로 편한 세상이다. 그때는 그랬었다. 문틈으로 들어온 연탄가스에 질식해 부모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 기억들이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한 번쯤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멀리 외출이라도 하는 날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열아홉 개의 불구멍을 맞춰가며 새 연탄으로 갈아 넣는 일은 힘이 들고 성가신 일이었다. 자칫 시간대를 놓쳐 불을 꺼트리는 날은 다시 불꽃이 살아 오르기까지 냉방에서 오들오들 떨어야 했으니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방마다 각기 데워주는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때는 길가 강아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희화화될 정도로 석탄산업의 호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붐볐던 곳. 군데군데 광부들의 고된 삶이 낡은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탄광촌, 그 과거의 역사를 간직한 석탄박물관에는 채탄 작업과 연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석유화학산업의 등장과 국민 생활 향상으로 뒷전에 밀려 사양 산업이 되어버렸지만 유추해보면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편안함과 따스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잠을 설쳐가며 아이들과 함께 떠난 새벽 여행, 에너지를 아끼고 자원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발길을 돌렸다.
올겨울 추위는 혹독하다. 대설주의보가 수시로 내려지고 분지인 이 지역에서조차 여러 차례 많은 눈이 내렸다. 보기 드문 일이기에 들뜬 마음으로 하얀 발자국을 찍어보지만 태백에서만큼은 기쁘지가 않다. 순식간에 마비되는 교통 혼란과 내린 눈으로 말미암아 며칠간을 시커멓게 변한 거리를 질척이며 보행을 해야 되니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전력난이 심각한지 아침저녁으로 관리실에서 절전에 동참해 달라는 부탁의 말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촛불을 켜놓고 하룻밤을 보내다가 화마 속에 손자를 떠나보낸 어느 노인의 울먹이는 얼굴이 눈에서 가시질 않는다. 서민들에게 다가오는 겨울의 길목이 짧았으면 좋겠다.
윤경희<시조시인 ykh64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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