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계부 덮고 싶다" 아무리 줄여도 식비 月100만원 "생활비의 절반"

4인 가정 지출 살펴보니… 가파른 물가 상승에 시름하는 서민 경제

물가 인상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한 가운데 22일 대구의 한 직장 여성이 지출한 생활비를 가계부에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물가 인상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한 가운데 22일 대구의 한 직장 여성이 지출한 생활비를 가계부에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공공요금이며 교육비며 하루가 멀다 하고 물가가 오릅니다. 가계부를 쓸 때면 울컥 화가 치밀어 더 이상 펜을 들기 싫어집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11)'아들(9)을 키우는 주부 정영혜(가명'40'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5년 동안 꾸준히 써오던 가계부를 2011년 5월부터 쓰지 않는다. 매달 꼬박꼬박 넣던 저축도 50만원을 줄였다. 날이 갈수록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밥상물가를 비롯한 각종 공공요금, 교육비가 오르고 있어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대구에 거주하는 40대 주부가 체감하는 4인 가구 최소 한 달 생활비는 210만~220만원.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 오른 금액이다. 이 중 식료품비로 사용되는 금액만 100여만원. 전체의 절반 정도가 필수 경비인 '밥값'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 김광석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연초 식탁물가 급등과 서민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저소득층의 엥겔지수는 23.4%로 2004년 3분기(24.4%)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엥겔지수는 가계소비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로, 엥겔지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가계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뜻한다. 수입은 고정돼 있는데 치솟아 오르는 밥상물가가 서민들의 목을 점점 조여오고 있는 것.

정 씨는 얼마 전 한 달 남짓 남은 명절 차례상에 올릴 조기 4마리를 미리 사두었다.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물가가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것이란 판단 때문. 정 씨는 "예전에는 같은 크기의 조기가 마리당 1만원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1만5천원을 훌쩍 넘는다. 명절 씀씀이를 예전보다 대폭 줄여도 나가는 돈은 100만원 가까이 든다"고 말했다.

오른 것은 조기만이 아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12월 및 연평균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밥상 위 농축산물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대구지역 배추, 상추, 열무 등 신선 채소류는 전년 동월 대비 19.5%나 올랐다. 김장철 채소인 배추는 1년 전에 비해 131.7%, 파는 137.8% 올랐다. 정 씨는 "2011년에는 같은 비용으로 김장을 45포기 담갔는데 지난해에는 배추값이 올라 30포기밖에 담그지 못했다. 비교적 저렴했던 제철과일도 지난해는 너무 비싸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아들과 딸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딸은 지난해부터 3년간 다녔던 피아노 학원을 끊었다. 영어 학원,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딸의 사교육비가 각각 1만원씩 올라 모두 37만원이 된 것. 여기에 국어, 수학 등 종합 과외비 10만원과 1만원씩 오른 아들의 학습지 비용, 태권도, 피아노 강습료를 더하면 아이들 사교육비만 한 달 79만2천원에 달한다. 결국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딸이 좋아하는 한 달 9만원 하는 피아노 학원을 끊어야 했다. 정 씨는 "요즘은 국, 영, 수는 물론이고 예체능까지 기본으로 한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집에 비하면 덜 들어가는 편"이라며 "학원비가 매년 3월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1만, 2만원씩 올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가정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치솟기만 하는 공공요금은 야속하기까지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구지역 지난해 12월 전기'수도'가스비는 2011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다. 이달 14일 전기요금은 평균 4.0% 인상돼 4인 가족 월평균 기준(350㎾h)으로 800원가량 올랐으며, 가스요금 역시 지난해 6월 4.7% 올랐다. 정 씨는 "올겨울은 너무 추웠던 탓인지 집안에서 옷을 껴입고 단열을 했는데도 전기'수도'가스비 등 공공요금이 20만원 넘게 나왔다"고 푸념했다.

정 씨는 매년 가던 가족 여행을 2년 동안 한 차례도 가지 못했다. 여유가 있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 중국, 태국 등으로 해외 여행도 다녔었다. 지갑이 부쩍 얇아지는 요즘은 차를 타고 멀리 나가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인근 공원으로 놀러 가는 것이 전부다. 한 명당 3만~4만원 하는 체험학습은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정 씨는 "시간과 돈이 넉넉해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모두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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