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수술실에서

내가 있는 병원은 수술실도 많지만 수술하는 의사는 더욱 많아서 각자가 오전이나 오후 중 한나절 단위로 수술하는 요일과 방을 배정받아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나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의 오전과 오후에 14호실에서 수술을 할 수 있다. 외과의사로서 이렇게 전용으로 할당된 수술실이 있다는 것이 당연해야 하겠지만 사실 규모가 크고 인원이 많은 병원일수록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매주 온전히 이틀씩을 내 이름으로 배정받기까지 신임 교수로 들어와서 몇 년이 걸렸다. 그전까지는 끊임없이 수술실 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녀야 했다.

집도의가 학회를 갔다든지 수술이 취소돼서 생기는 빈방을 찾기 위해서다. 당시 우리는 그 모습을 '빈 수술실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와 같다고 말하곤 했다.

얼마 전 수술실에 들어서다가 칠곡경북대병원에 있는 후배 김상걸 교수와 마주쳤다. 반갑다고 인사하며 웬일이냐고 물으니 같은 분야의 윤영국 교수께서 집도하는 수술의 조수를 맡으러 왔단다. 내게도 은사인 윤 교수님은 다음 달 정년을 맞아 퇴임한다.

교수가 다른 교수의 조수를 맡는다는 것은 집도의에 대한 대단한 예우라고 할 수 있다. 윤 교수님은 그날 오후 9호실에서 마지막 수술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에게 나도 가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김 교수와 헤어진 뒤 14호실에서 내 수술을 준비하는 중에 문득문득 감회가 솟구쳤다. 내가 의과대학생일 때 군의관을 갓 제대하고 강의를 맡은 윤 교수님은 내가 전공의 시절에는 30대의 패기만만한 젊은 외과 교수였다. 수많은 응급 수술을 도맡아 했고, 항상 기대에 못 미쳤던 우리는 꾸중도 참 많이 들었다. 그렇게 병원에서는 불호령을 내려도 젊은 교수님이라 비교적 만만(?)했고, 그래서 일과 후 전공의들과 함께 술도 자주 마시며 이런저런 인생 상담도 도맡아 해 주시는 따뜻한 분이셨다.

윤 교수님은 지금은 간'담'췌장을 맡고, 나는 위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시절 내가 위 절제수술의 제1조수를 처음 했던 집도의가 바로 윤 교수님이셨다. 지나온 세월에 담긴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 수술을 끝내고 9호실로 가니 윤 교수께서 우리 병원에서의 마지막 수술을 시작하고 계셨다. 제자인 김 교수가 조수로 돕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어느덧 수술이 끝났다. 윤 교수께 "감회가 어떻습니까?"하고 여쭈니 대답 대신에 가만히 웃기만 하셨다. 내가 괜한 질문을 했나 하고 다시 여쭈었다. "이 동네에 몇 년 계셨습니까?" 했더니 군의관 시절 3년을 빼면 의과대학 입학부터 42년째란다.

세월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싶었다. 아니, 세월은 그 자리에 있는데 정작 흐르는 것은 우리라는 생각에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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