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수동이체

이른 아침부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서로 바쁜 관계로 만날 기회가 적었던 문단의 한참 선배님께서 신년도 되었고 하니 몇 마디의 덕담과 함께 떡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 전 물건값 대납한 것을 잊고 있었다며 함께 보내겠다고 하셨다.

"잊어버려서 미안테이, 고마, 떡 안에 돈을 넣어 보낼 게…."

순간적으로 감사한 마음보다 웃음이 튀어나왔다. 떡 안에 돈이라니!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뇌물사건이 생각났다. 누구처럼 사과박스에 돈다발을 받는 유명인사도 아니고 떡 상자에 돈이라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직접 은행에 가지 않아도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으로 짧은 시간 안에 공과금에서부터 예금조회와 송금까지 할 수 있다. 은행 마감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장시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더욱 편리하다. 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접속하기가 까다로우며 보안면에서도 해킹의 위험성이 작지 않으니 편리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더더군다나 워낙 바쁘신 분이니 은행까지 가서 송금한다는 자체가 무척 성가신 일이었을 터, 그러다 보니 차일피일 미뤄졌으리라.

예전에 어머니는 푼돈을 모아 은행이 아닌 친구 분들과 계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주부들에게는 유일한 저축수단이었다. 어느 날 큰돈을 가지고 가야 할 일이 생겼는지 갑자기 부엌에서 사용하던 냄비를 방에 들고 들어오시더니 대뜸, 돈을 신문지로 둘둘 싸고서 고무줄로 동여매어 냄비 안에 넣는 것이다. 내겐 그 광경이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어딘가 모르게 무지렁이 같은 모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더니 가방 안에 돈을 넣고 가다가 날치기라도 당할까 봐서라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렵사리 모은 돈을 빼앗긴 적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누가 봐도 음식을 담아간다 생각할 일이지 설마, 냄비 안에 큰돈을 넣었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신 생각에 허술한 것이 오히려 안전하리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런 원시적인 경험들을 본 탓인지 장기간 집을 비울 때면 나 역시 귀금속을 생각지도 못할 허술한 곳에 넣어두고 갈 때가 있다. 때로는 어떤 규칙과 논리가 현실에서 모두 옳다고만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온기가 미지근하게 남아있는 떡이 배달됐다. 노란 고무줄로 팽팽히 감겨 이체(?)되어온 돈 봉지도 함께. 방법이야 어찌 되었던 돈을 전달받았으니 새해부터 일거양득의 재물이 수북하게 들어온 느낌이었다. 문득, 달콤한 떡 냄새에 환히 웃으시는 선배님의 얼굴과 그 옛날 어머니의 순수한 모습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자동이체의 편리함도 좋지만 가끔은 잔잔한 정이 묻어나는 이런 수동이체도 이 각박한 시대에 필요치 않을까? 윤경희<시조시인 ykh64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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