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삶의 작은 배려

내가 예민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리를 걷다 어깨를 부딪치고 가는 상대방이 한마디 사과의 제스처도 보이지 않을 때,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 계단을 두어 개 오르는 사이 버스가 출발해버려 몸의 중심을 잡지 못했을 때, 수시로 바뀐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타기 방침으로 인해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가려는 사람과 걸어 올라가려는 사람의 심리적인 싸움을 볼 때 아이러니하고 짜증스럽고 답답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너무 피곤하여 가끔 택시라도 타게 되면 택시기사는 승객의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세상 한탄사를 피곤에 절어있는 승객에게 미사일처럼 쏟아붓고,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릴라치면 사람들은 내리는 자들을 밀쳐내며 지하철 안으로 쑤시고 들어오기 일쑤다.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어 건너려 하면 앞으로 차가 한 대 쌩하고 지나가고 횡단보도 중간 정도를 건널 즈음 신호가 바뀌지 않았음에도 차 한 대가 또다시 뒤로 쌩하니 지나간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사인 좀 해주세요!'라며 야구장에서 외칠 만한 소리를 내지르며 수첩을 내미는 분들을 만날 때 나는 위 상황들과 흡사한 감정상태가 되어버리곤 한다. 조금만 세심하게 다가와주었다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함께 기분 좋은 상황이 될 수 없었던 것에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조용히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피곤해 보이는 손님을 위해 라디오 볼륨을 줄여주는 택시기사님,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손님이 나갈 때 따뜻하게 웃으며 인사를 해주시는 커피숍사장님, 혼자 장을 보러 온 손님에게 늘상 혼자 온다며 장가가서 함께 나누며 살라고 수줍게 말씀을 건네는 동네 구멍가게 사장님, 몸이 안 좋아 보이면 어느 자리에서건 조용히 쉬라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분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상대방이 어려워할까 봐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바보 같지만 사랑스러운 나의 영화 친구들.

2008년 첫 장편영화를 완성한 나는 한동안 여러 영화제에 초대되어 자주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의 작은 에피소드 하나. 독일 '뮌헨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건물 사이 넓은 홀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는 잠시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 건물 입구에는 하나의 커다란 유리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로 통하는 또 다른 두 개의 문이 나 있었다. 볼일을 보고 남자 화장실을 나오고 있는데 약 4, 5살가량의 금발의 아이가 나보다 몇 걸음 앞서 여자 화장실에서 나와 통유리문을 열고 나가려는 중이었다. 그 아이의 뒤를 따라나가려던 나는 잠시 멈칫하며 섰다. 앞서 나가던 아이가 그 큰 통유리문을 열고는 힘겹게 낑낑거리며 문을 잡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내 그 아이가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고 순간 아이가 잡고 있던 문을 얼른 손으로 낚아챘다. 그 아이는 아장아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4년 전에 경험한 작은 에피소드다. 그 당시의 꼬마아이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상황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그 아이의 작은 배려에 적지 않게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 아이가 취한 배려의 행동은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부분도 한몫했겠지만 분명 아이의 부모나 주변 환경이 자연스럽게 '배려'라는 것을 그 아이에게 소개해 준 덕분일 것이다. 부모 그리고 주변 환경이 구축해 놓은 배려의 경험치가 이 작은 아이에게 전해지고 자연스레 습관화된 아이의 배려심이 이국에서 온 이방인에게로 전해지며 감동으로 작용된 것이다.

배려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작은 감동이다. 타국에서 겪은 특수한 일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작은 배려는 일상의 감동으로 작용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배려를 행한 자의 마음 안에서도 뿌듯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세하게 작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배려는 기본 미덕이다. 그 기본이 인간 한 명, 한 명에게 자연스레 스며든다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질 것이고 불안은 축소될 것이다. 작은 배려 하나가 늦은 오후 밤늦게 귀가하는 좁은 골목길을 아늑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 일이다.

양익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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