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五餠二魚(오병이어)에 세금 물리기

흔히 나눔과 베풂을 이야기할 때 예수님의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말한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의 군중들을 배불리 나눠 먹게 했다는 얘긴데 산술적으로는 계산이 안 나오는 얘기다. 성서의 비유적 가르침은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나누면 서로에게 더 이익이라는 베풂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갖고 있던 오병이어만으로는 5천 명의 배를 채울 수 없다. 그분들이 먼저 나눠 보임으로써 군중 사이에서 너도나도 자기 보따리를 꺼내 옆자리 사람에게 조금씩 같이 나눠 주는 '분위기'가 전파돼 5천 명이 끼리끼리 배부를 수 있었다고 보는 게 좀 더 논리적이다.

만약 그때 빵과 고기를 나눠 베푼 예수님과 제자와 군중들에게 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세금을 매겼다고 해보자. 세금 폭탄 맞아가며 제 보따리에서 저 먹을 빵을 꺼내 남 줄 리가 없다. 예수님이 아무리 나눠 주자고 설득하고 모범을 보여줬더라도 움츠리고 주머니 끈을 졸랐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빵이 없는 자는 굶어야 했을 것이다.

나누고 베풀겠다는 사람들에게 거꾸로 가진 자라고 세금을 매기면 나눔의 마음은 움츠러든다. 정부 관리들 셈법으로야 세금이 더 늘어날 것 같지만 거꾸로다. 세금 더 거둬서 빵이 없는 계층에게 나눠 주는 것과, 가진 계층이 기부 문화를 통해 빵이 필요한 계층에게 빵이 나눠지게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세금 때리고 억지로 쥐어짜서 나눠 주는 방법보다는 자연스럽게 나눔의 문화를 펼쳐 주면 가진 계층이 대신 해결해 주는 효과가 더 크니까. 세금으로 거두면 10~15%밖에 못 나눠 주지만 기부금으로 나눠 주면 80~90%가 소외층에게 돌아갈 수 있다. 아둔하게 계산을 거꾸로 하고 있는 거다.

MB 정부가 5년 내 열심히 하고도 '실패한 정부'로 비판받는 이유가 따로 없어 보인다. 기부자들에 대한 세제 혜택은 늘리면 늘릴수록 좋다는 증거는 많다. 아직은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 좋은 예다. 그들의 최대 강점은 무력이나 달러의 힘보다 정신의 힘에 있다. 미국의 3대 경쟁력 중 첫째가 기부 정신과 자원봉사 정신이다. 미국의 1년 기부금은 현금으로 6천억 달러(700조 원) 수준이다. 몸으로 때우는 기부인 자원봉사도 돈으로 환산하면 300조 원쯤으로 추산한다. 그 밑바닥에 세제 혜택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의 기부금은 약 7조 원 정도로 미국의 100분의 1이다. 그마저 전체 기부금의 68%는 기업의 기부다. 개인 기부(32%)는 아직 3분의 1 수준이다. 그동안 기업의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도움이 됐다는 증거다.

그런데 정부가 시대정신과는 거꾸로 가는 세법(조세 특례 제한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유는 단순히 부자 계층에게 세금 더 매기겠다는 정치권의 '부자증세' 구호에 부화뇌동해서다. 세제 배려 끊으면 즉각 기업 등이 내던 5조 원 가까운 기부금이 덜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기부금 혜택받던 소외 계층에게 그 돈만큼 정부가 대주는 것도 아니니 힘든 계층만 더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싸이 같은 인기 가수가 수억 원을 기부했을 때 앞으로는 기부한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를 거의 받지 못한다. 기부금으로 낸 돈에 대해서까지 세금을 물게 되는 판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순순히 기부를 할 것인가. 그들 계층이 지갑을 닫으면 세금은 더 짜낼지 모르나 세금보다 7배나 더 많은 기부금은 통째로 사라진다. 문화 예술계, 복지 시설 수용자 등 수혜 대상자들만 손해 보고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게 무슨 선진 복지 정책이 될 것인가. 부자도 부자 나름이다. 기부금 내는 부자는 쥐어짤 게 아니라 젖소처럼 마사지를 해 줘야 한다.

기부 문화라는 것은 부자들의 돈 자랑이 아니다. 워런 버핏 같은 세계 최고의 부자나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내 가족이 행복하려면 세계가 평화로워야 한다'며 자녀 유산 대신 사회 기부를 실천한다. 미국의 보수 계층은 '재산 절반 기부하기 운동'까지 벌인다.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이 파격적이고 기부자를 우대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기부 정신이 강한 보수, 중산층이 늘어나야 전 국민이 고루 행복한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기부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부터 갖춰줘야 하는데 왜 거꾸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장단 맞춰 세계화와 시대정신에 뒤지는 정책을 생각 없이 내놓는가. 오병이어에 세금 물리는 식의 기부금 혜택 축소 정책, 즉각 철회돼야 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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