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술만큼 남 못잖아요"…지체장애 1급 구두수선 박영자씨

경북대 복지관 구두 수선집…간단한 작업은 '무료봉사' 인기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구두를 수선해줄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학생들이 큰 꿈을 갖고 사회에 진출해 성공하기를 기원해요."

대구 산격동 경북대 캠퍼스 박물관 뒤 복지관 지하 1층 구두 수선집. 지체장애 1급인 박영자(52) 씨가 13㎡(4평) 남짓한 공간에서 여대생이 맡겨 놓은 구두 굽갈이를 하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박 씨가 낡은 굽을 떼어내고 새 굽을 끼워넣고는 망치질 몇 번 탕탕 하니 구두는 금세 온전한 구두로 탈바꿈했다. 여성으로서 힘든 일이지만 작업 시작 10여 분 만에 수선을 끝냈다. 박 씨는 굽 수선비 2천원을 받고 학생에게 구두를 건넸다.

경북대에서 구두 수선점을 13년째 운영하는 박 씨는 몸이 불편하지만 마음이 곱기로 소문나 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의 구두 수선점은 장애인 자립장으로 대구 지역 대학에서는 경북대 캠퍼스에서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다. 경북대 총장과 학생회가 장애인 자립을 위해 2000년 4월 복지관에 장소를 배려해 박 씨가 입점했던 것. 박 씨는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학생들을 위해 수선비를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여성 장애인이 구두 수선을 한다고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구두 수선 기술력만은 남 못지않아요. 무엇보다 캠퍼스에서 생동감 넘치는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큰 즐거움입니다."

박 씨는 경북대 정문 건너편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매일 오전 9시에 휠체어를 타고 작업장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한다. 어릴 적부터 앓은 지체장애 때문에 목발을 하고 다녔던 박 씨는 8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가 아니면 이동이 불가능하다. 박 씨가 지금껏 수선해준 구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박 씨는 매일 1시간 정도 운동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캠퍼스를 돌고 있다.

박 씨는 신발 안창 접착 등 간단한 작업은 돈을 안 받는다.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신발을 수선하고 돈이 없을 땐 그냥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박 씨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다음에 찾아와 수선비를 꼭 갚아준다. 또 박 씨는 봄과 가을에 열리는 학생 축제 때도 경비를 정성껏 보태주기도 한다.

"신발을 수선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한 뒤 다시 찾아올 때 가장 보람 있어요. 한 번은 취직한 학생이 결혼을 했다면서 장미 선물을 갖고 인사를 와 정말 뿌듯했어요."

박 씨는 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한 구두 수선 전수에도 나선다. 손이 불편한 한 50대 남성이 박 씨 점포에서 1년 넘게 무료로 교육 중이다. 박 씨는 지금껏 장애인 5명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전수자들은 모두 자립해 수선점을 운영하고 있다. 박 씨는 장애인 자립 모임인 '샘터 자립회'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박 씨는 취미로 그림 그리기와 도자기 빚기를 5년째 배우고 있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면 장애인들에게 문화를 보급하는 데도 힘을 쏟을 생각이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지체장애를 가진 박 씨는 초'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나와 대구보건대에서 치기공을 전공했다.

"장애인들도 자꾸 숨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해요. 자기발전과 문화활동을 통해 긍정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살 때 행복도 보장되거든요."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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