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을 빼고 영주를 이야기할 순 없다. 백두대간의 허리, 겹겹이 쌓인 소백산의 산세는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게 사람을 끌어안는다. 옛 선비가 걷던 길, 까마득한 숲길 속을 휘적휘적 걷다 보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소백산 자락길 중 1자락길을 걷기로 했다. 전날에는 소수서원을 돌아보고 선비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선비촌은 영주의 여러 문중 가운데 대표 건물 12채를 옮겨온 곳으로 고택 숙박이 가능하다. 한옥집 얇은 창호지 홑문이 겨울바람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이불 속에 몸을 파묻으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영주의 유교 문화를 한 곳에서
선비촌 일대는 영주의 유교 문화를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선비촌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이 있고, 왼편으로는 소수박물관, 소수서원과 맞닿아 있다. 소수서원 맞은편에는 금성대군 신단이 자리 잡았다. 걸어서 2시간이면 너끈하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라는 명성에 못지않게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소수서원 주변은 수백 년 된 적송 숲이 둘러서 있고, 서원 옆으로는 죽계천이 얼음 밑을 들락거리며 흘러간다. 소수서원의 전신은 '백운동서원'이다.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세워 백운동서원을 지었고, 1549년 퇴계 이황의 청을 받은 명종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경렴정에서 죽계천을 보면 물가에 튀어나온 바위에 붉은색으로 '敬'(경)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에는 슬픈 역사의 흔적이 스며 있다. 소수서원이 세워지기 100년가량 전, 순흥으로 유배왔던 금성대군은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다 발각된다. 이 일로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았고, 순흥 인근 30리 이내 주민들까지 처형되며 쑥대밭이 됐다. '정축지변'(丁丑之變)이다. 죽계천에 쏟아진 사람들의 피가 10리를 흘러가 멎은 곳이 피끝마을, 현재의 동촌1리다. 일부 주민들은 죽계천에 수장됐는데 억울하게 살해당한 원혼들이 밤만 되면 울었다고 한다. 유생들이 밤에 뒷간도 가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바위에 새긴 '敬' 자에 붉은 칠을 하고 제사를 지낸 후에야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전한다. 소수서원은 353년간 4천여 명의 유생이 거쳐 갔다. 퇴계 선생의 문하생 대부분과 김성일, 정탁 등이 이곳 출신이다. 문화관광해설사 강명숙(55) 씨가 속사포처럼 설명을 쏟아냈다. 평일에 보통 6시간 동안 3, 4팀에게 해설을 한다는 그는 "내 차 번호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 연도는 기가 막히게 외운다"며 웃었다.
◆눈 속에 파묻힌 달밭골을 걷다
산자락을 타고 넘는 소백산 자락길은 12자락으로 나뉜다. 소수서원에서 출발하는 1자락은 죽계구곡과 초암사, 달밭골길, 비로사를 거쳐 삼가주차장으로 가는 12.6㎞ 구간이다. 1자락은 선비길과 구곡길, 달밭길로 나뉜다. 구곡길 초입인 배점마을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배점마을은 퇴계 선생의 유일한 천민 제자였던 배순의 대장간 점포가 있었던 마을이다. 영주~순흥을 운행하는 53번 버스 중 덕현리로 들어가는 버스가 하루 5회 왕복 운행한다. 배점2리 삼괴정 출발점에서 내려 3.5㎞, 1시간 20분가량 걸어 올라가면 초암사가 나온다.
구곡길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시멘트 포장길이 초암사까지 아홉 굽이의 계곡길을 거슬러 이어진다. 퇴계 선생은 계곡물 소리가 노랫소리 같다며 제각각 이름을 지어줬지만 귀를 쫑긋거려도 한겨울 얼어붙은 계곡이 물소리를 낼 리는 만무했다.
초암사에서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빽빽한 숲길로 달밭골까지 이어진다. '달밭'은 '산에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오래전에는 화전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고, 해방 이후 정감록의 '비결서'를 믿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십승지 중의 하나였던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좁은 오솔길은 온통 눈밭이고, 앙상한 나무 밑동은 두꺼운 눈 이불을 덮고 있다.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계곡길과 숲길이 번갈아 나오니 지루하지는 않다. 2.4㎞가량 오르막길을 따라 산을 돌아들면 달밭골이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화전민의 흔적이 나타난다. 허름한 민가 앞을 서성였지만 인기척이 없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사람들이 살지만 겨울에는 주말에만 온단다. 산길을 따라가는 같은 길을 두고 영주시는 소백산 자락길이라 부르고, 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소백산 문화생태탐방로라고 부르는 것이 혼란스럽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시림처럼 울창한 잣나무 숲을 100여m 지나면 숲길은 끝이 난다.
◆사람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하고
산길을 벗어나니 '산골민박'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먹자' 싶어 문을 두드렸다. 막걸리 한 통을 청하니 주인이 안으로 들어오라 잡아끈다. 김진선(51) 씨다. 김 씨가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더니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내 시커먼 프라이팬에 황태 두 조각을 굽더니 턱 내려놓는다. 김씨는 올해로 귀향 10년 차다. 아버지가 40년간 하던 민박집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김 씨의 부모님은 모두 이북 출신이다. 황해도 곡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대지주였고, 함경도 함흥이 고향인 어머니도 부유한 집안이었다. 해방 이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김 씨의 부모는 월남을 했고, 소백산 품으로 숨어들었다. 이곳은 당시, 6'25전쟁이 난 줄도 몰랐던 오지였다. 김 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기만과 꼼수, 접대와 물밑 거래가 판치는 곳에서 25년을 버텼는데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고 했다.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수시로 코피를 쏟았다. 정신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날,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었다고 했다. "나도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고향집이 있는데 왜 이러고 있을까. 그 길로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왔어요."
김 씨의 민박집 앞 작은 원두막에는 자율계산함이 있다. 막걸리가 든 냉장고도 밖에 뒀다. 먹고 싶은 만큼 꺼내 마시고 알아서 돈을 내라는 식이다. "자율계산함을 설치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늘 내준 막걸리 값보다 많은 돈이 들어 있는 거예요. 나는 누가 몇 병을 먹었는지도 모르거든요. 그런 걸 보면 아직 대한민국이 가치 있는 나라구나 싶어요."
이곳엔 또 하나의 명물 '자유의 종'이 있다. 1968년 영주 철도국에서 기증한 45년이나 된 종이다. 1960년대 달밭골에 40여 가구가 살 때 위급상황이나 마을 회의를 소집할 때 연락용으로 쓰던 종이다.
그는 "소백산 자락길 여행 중 이곳을 지나는 이들이 종을 치며 반기고 인사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달았다"며 "소백산에서부터 작은 바람을 일으켜보고 싶다. 물질보다 가치를 중시하며 한없이 자신을 비우는, '나눔의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후회하진 않으세요?" "후회하죠. 너무 늦게 들어왔다고 후회해요. 왜 쓸데없이 내 몸 상하는 줄 모르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여기서 사는 게 이렇게 축복인데. 하하."
◆취중에 둘러본 풍기역과 인삼시장
급하게 비운 막걸리 잔에 흠뻑 취기가 올랐다. 하지만 정해둔 일정을 깰 순 없었다. 비로사를 둘러보고 삼가리 주차장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 아래 자리 잡은 비로사는 680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시대 고찰이다. 산골민박에서 비로사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지만 시내버스를 타려면 삼가리 버스정류장까지 1.8㎞를 걸어가야 한다. 삼가리에서는 풍기역을 거쳐 영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26번 버스가 하루 8번을 오간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 30분. 걸어 내려가서 오후 2시 10분 버스를 타기는 너무 빠듯했다. 김 씨의 승합차를 타고 삼가리 주차장까지 가기로 했다.
김 씨와 구판장에 들어갔다 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막걸리와 부침개 한 접시를 주문했고,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합세했다. 두 번의 버스를 그냥 떠나 보냈다. 오후 4시 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황급히 짐을 챙겨 버스에 올라탔다. 풍기역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풍기역과 맞붙은 현대식 건물의 인삼시장에는 굵직한 수삼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풍기에는 이곳 외에도 4곳의 인삼시장이 더 있다.
풍기역에서 100m가량 큰길로 걸어나오면 소백산풍기온천으로 가는 영주-온천 버스를 탈 수 있다. 30, 40분 간격으로 하루 20회나 운행되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재지 않고 나와도 된다. 유황온천인 풍기온천에서 긴 산행의 피로를 풀고 나니 오후 7시 30분이 훌쩍 넘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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