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경운기, 승용차를 이기다.

속도의 시대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1시간 50분이면 도착한다. KTX가 없었던 과거보다 소요 시간을 2시간 줄인 셈이다. 당연히 그 남는 시간은 여유 시간으로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간을 단축했다면 줄인 만큼 삶의 여백이 생기고 한가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더 긴박하고 바빠졌다.

가끔 이런 빠른 속도가 비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속도 전쟁에서 실패할 때마다 찾는 곳이 있다. 도시에 지친 삶을 토닥여 주는 시골이다. 고향의 향기라도 맡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골길을 달렸다. 갑자기 2차로에 차가 막혔다. 앞서 가는 경운기 한 대가 시속 10㎞도 안 되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뒤로 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바로 앞 중형 승용차 한 대가 꽤 답답했던 모양이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려댔다. 반대편에서는 차량들이 쏜살같이 달리고 있기에 중앙선을 넘어 앞지르기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듯했다. 그렇다고 경운기에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지 않는가. 반면 경운기를 모는 할아버지는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지, 상관없다는 식으로 유유히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다.

드디어 뒤차들이 추월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순간, 앞차는 중앙선을 넘어 경운기 옆에 차를 바짝 붙여 대 창문을 열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 달아났다. 나머지 뒤차들도 경운기를 추월했다. 나도 경운기를 앞서면서 할아버지의 반응을 살폈다. 놀라웠다.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한가운데서 할아버지는 세상이 멎은 듯 평화롭게 제 길을 가고 있다. 따르는 뒤차가 경적을 울리든 말든 창문을 내리고 젊은 놈이 자신에게 욕을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달릴 뿐이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까지 품었다. 통쾌했다. 할아버지의 그 평화로운 모습을 보는 순간, 생각 하나가 덜미를 잡는다.

처음 이 산천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이 길은 원래 들짐승들과 바람이 다녔을, 옛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지났을 길이었으리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의 앞마당에서 쭉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도저, 굴삭기가 괴물처럼 쳐들어와서는 둔덕을 밀고 땅을 파서 콘크리트길을 냈다. 그 길에다 중앙선, 2차로, 횡단보도라는 줄을 그은 후, 허락 없이 넘나들지 못하게 해놓고, 어기면 모두 범법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처음 주인들은, 그것은 너희들이 정한 법칙일 뿐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냥 그렇게 살고 계신다.

무릇 빠른 속도를 숭배하며 느림에 대하여 멸시의 시선을 보낸다. 순리대로 사는 자연적인 삶에 더 익숙한 이 시대의 느림보들은 삶의 리듬에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천덕꾸리기 같은 존재로 인식될 뿐이다.

맹목적으로 '빠름'만 숭상하다 보니 '바름'을 잃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이 성장 일변도로 얻은 1등, 타인의 행복을 빼앗아 쟁취한 '나홀로 성공'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높이 올라갈수록, 빠를수록 피해자만 속출할 뿐이다. 정신없는 질주는 성찰을 잃게 했다. 속도를 따라잡기에도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용하기도 버거운데 삶을 조율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단지 느림의 지혜, 빠름의 삭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 토끼는 빠름의 대명사, 거북이는 느림보를 의미한다. 각기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얕보지 말고 먼저 가서 모두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느림'이 인생 패배자가 아님을 알고 자기만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자는 말이다.

원래 주인은 제 앞마당에서는 더 여유로운 법이다. 곡식단 가득 실은 할아버지를 닮은 경운기 한 대, 세상이 아무리 빨라도 세월의 꽁무니만 털털거리며 따라간다. 그 위에 앉은 촌로의 주름진 얼굴에는 너털웃음까지 실렸다. 풍류에 젖어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유유자적(悠悠自適)을 악착같이 방해하는, 자신의 불안을 빵빵 터트리는 젊은이의 승용차가 저무는 노을 속으로 가엾게 사라진다.

가만히 보니 경운기가 승용차를 이긴 듯하다.

이상렬.수필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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