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연착륙을 이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명박 정부와 새 정부를 연결하는 끈이고, 새 정부의 색깔을 입힐 물감이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주목된다. 하지만 출입하는 기자로서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작품이 창조되는 과정은 모조리 생략되고, 결과만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려는 기자들은 울상이기 마련이다.
서울지하철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 인수위 셔틀버스를 탄다. 하루는 대구 출신 새누리당 당직자로서 인수위 전문위원인 지인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니 대뜸 "아이고, 제가 입이 없습니다. 잠시 눈 좀 붙이겠습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함구령 탓이었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눈을 감는 그 모습에서 참담함을 느꼈다. 나랏일 하느라 피곤하겠구나 여겼지만 인수위에 발탁된 인사들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기자들이 많다. '그 권력이 평생 가나 두고 보자'라고 벼르는 사람들도 있다.
인수위 앞은 시위자들로 가득하다. 대부분 1인 시위다. 경찰병력이 몇 겹씩 둘러싼 채 인수위를 지키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자와 이를 막는 자들로 인수위 밖은 종일 시끄럽다.
오전 8시쯤부터 기자들의 '뻗치기'(무작정 기다리는 것)가 시작된다. 인수위원들로부터 어제의 결과와 오늘의 계획을 듣기 위해서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허탕'을 보고해도, 만약을 대비해 기다림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부 언론사는 인수위 인근 게스트하우스를 두 달간 빌렸다고 한다. 특종을 위해서였는데, 낭패라는 하소연이 들리고 있다.
인수위 회의가 열리는 곳과 기자들이 있는 곳은 건물이 다르다. 50m 정도 떨어져 있다. 인수위 건물은 입'출국 심사를 하듯 까다로운 검사를 받아야 통과된다. 기자들은 아예 출입할 수 없다. 모든 과정이 비공개다. 인수위 회의 초반을 '찔끔' 공개하지만 그것도 풀기자단만 들어갈 수 있다.
출입 등록한 언론사가 194곳, 출입기자가 1천 명에 육박한다. 한번은 인수위를 출입하는 언론사 소속 기자 1명씩 194명이 인수위원 모두를 만나 '환담회'를 한 적이 있다. 언론이 '불통' '먹통' '밀봉' 등 인수위의 정보 차단에 부정적인 분위기를 연일 보도하면서 관계개선(?)에 나선 느낌이었다. 인수위 건물에 직접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환담회 시간이 고작 30분이어서 공개하고도 비난을 샀다. 인수위원들도 기자들의 질문에 동문서답하느라 바빴다.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자리를 떠났다. 결국, "잠은 잘 자느냐" 수준의 인사 정도만 오갔고, 서로가 민망해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졌다.
오전과 오후에는 인수위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인수위 대변인이나 당선인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을 한다. 인수 과정의 중간결과를 발표하는 수준으로 '영양가가 별로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하루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기자들의 흡연구역에 와 담배를 피운 적이 있는데 그는 기자들의 모든 질문에 "좀 지켜봅시다" "좀 기다려봅시다"라고만 했다. 그 뒤로 기자들이 그에게 뒷이야기를 묻지 않는다.
정보를 얻으려는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전화를 돌린다. 하지만 성에 차기는 어렵다. 그래서 기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조각(組閣)의 세평을 주고받으며 퍼즐을 맞춘다. 엉뚱한 정보가 걸러지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에는 '기자들의 대화'가 한몫하기도 한다.
인수위로 쓰이는 한국금융연수원은 서울의 유명한 데이트 코스인 삼청동에 있다. 갤러리와 카페, 맛집이 운집해 있다. 인수위에서 나오는 정보는 없고, 사람은 넘치니 그 주변은 지금 한가한(?) 사람들로 '인수위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인수위 관계자들은 그 인근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기자들의 '안테나'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관을 지켜보며 벌써 겁(?)을 먹은 기자들도 많다. 낙종은 없겠지만, 특종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출입 기피 현상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었지만, 당선 이후에는 얼굴 보기가 힘들다. 대선 후보와 대통령 당선인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새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어떻게 이룰지 주목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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