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안전불감증

재난영화 '타워'의 진짜 주인공은 화마와 싸우는 사람이 아닌 '안전불감증'이다. 108층 초호화 주상복합빌딩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한다. 작동하지 않는 스프링클러를 '뭔 일이야 있겠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보고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위해 무리하게 헬기를 띄운 탓이다. 눈을 뿌리던 헬기가 돌풍의 영향으로 건물에 충돌해 화재를 내지만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영화처럼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는 현실에서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서해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대형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고질병이라고 부를 만하다. 문제는 안전불감증이 매년 화두가 되고 있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 각지에서 불산, 염산 등 유독물질 누출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구미 불산사고는 국내 최대 화학물질 사고로 기록됐다. 5명의 직원이 사망하고 1만 명이 넘는 주민이 병원 치료와 검진을 받았다. 불산가스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아직도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작업자들이 야외작업장의 탱크에서 불산을 빼내는 과정에서 작업 순서를 지키지 않는 등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드러났다.

구미 불산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지난달 12일에는 상주에서 염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사망자는 없었지만 인근 지역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고 원인은 당초 거론된 동파 때문이 아니라 배관 이음 부분 등 부품 결함에 의한 파손인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 초일류기업에서도 사고는 예외가 없었다. 지난달 28일 삼성전자 반도체 경기 화성공장에서 또다시 불산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누출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늑장 대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도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에야 이뤄졌다. 세계 최고 기업도 안전관리에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준 사례다. 밸브 교체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뿐 아니라 공장 내 1만2천여 명의 직원 모두를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18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다쳤다.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생존 부상자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금까지도 불면증과 우울증, 불안장애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을 지켜본 대구시민들도 '정신적 외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부끄럽게도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 2, 3위 오명은 대구가 갖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세계 지하철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2번째이고, 1995년 발생한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는 3번째이다.

대구는 참사 후 안전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구 팔공산 동화지구에 안전체험시설인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만들고 소방안전엑스포를 매년 열고 있다. 2008년 12월 문을 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지난해 말까지 53만7천여 명이 다녀갔다. 이곳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불이 시작된 1079호 전동차의 한 칸이 전시돼 있다. 10년 전 그날을 되새기며 시민들 모두가 '안전불감증은 모든 사고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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