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덩치값 못하는 문화예술회관] <상>경북도민 혈세 낭비 논란

한해 수십억 20년간 지원 '밑빠진 독에 돈붓기'

724억원과 495억원을 들어 BTL 방식으로 각각 건립한 경주예술의전당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이 혈세 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대공연장 활용도마저 떨어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과 전경.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전경.
724억원과 495억원을 들어 BTL 방식으로 각각 건립한 경주예술의전당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이 혈세 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대공연장 활용도마저 떨어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과 전경.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전경.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전경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전경

경북도내 일부 문화예술회관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다. 초기 지방자치단체가 조달할 수 있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임대형 민자사업(BTL: Build-Transfer-Lease) 방식으로 건물을 지었고 이후 인력, 예산, 수요 부족으로 활용도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BTL의 특성상 개관 시점을 기준으로 향후 20년 동안 매년 수십억원씩 세금으로 보전해 줘야 하는 탓에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공연장, 혈세가 줄줄 샌다

경주IC에서 내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서천을 따라 5분여를 달리면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인 첨성대, 선덕대왕신종, 왕릉 등을 형상화한 최신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724억원을 들여 2010년 문을 연 경주예술의전당이다.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건축 연면적 2만245㎡에 지상 5층, 지하 2층 규모인 이곳은 1천100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350석 규모의 소공연장, 전시실, 세미나실, 야외공연장 등을 갖췄다. 대구경북을 통틀어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최신 무대'음향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2005년 건립 추진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BTL 방식인 탓에 경주시의 초기 비용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건설비 700억여원을 민간업체가 부담하는 대신 경주시가 앞으로 20년간 매년 65억원씩 지급해야 한다. 건설비의 2배 가까운 1천300억원이다.

해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지급액이 조금씩 늘기 때문에 지급 총액은 이보다 더 커진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여론도 많았다.

당시 백상승 경주시장은 천년고도 경주에 새로운 문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주변의 반대에도 건립을 밀어붙였다.

엄기백 관장은 "전국 156개 문화예술회관 중 이 정도의 매머드급은 몇 개 안 된다. K-팝(한국 대중가요)이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고, 향후 K-컬처(한국 문화)를 전 세계로 전파하기 위해서라도 이 같은 대공연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BTL 방식으로 495억원을 들여 2010년 개관한 안동문화예술의전당도 혈세 낭비 논란을 일으켰다. 안동시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앞으로 20년간 매년 40억원에 이른다.

안동문화예술회관은 1만6천42㎡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이며 대공연장은 1천 석, 소공연장은 261석 규모다.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너무 크게 지어 혈세만 낭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 권모(39) 씨는 "수백억원을 들여 공연장을 지었지만 정말 보고 싶은 공연을 볼 수 없어 대구로 공연을 보러 가는 경우도 많다. 최근 계명대까지 가서 레미제라블을 봤다"며 "BTL 방식으로 지어진 탓에 지나치게 많이 혈세가 빠져나가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하영일 관장은 "안동은 도청 이전 예정지 주변에서 문화 중심지"라며 "도청 이전이 완료되는 2014년 이후에는 안동을 중심으로 공연 문화도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1년에 260일 노는 공연장

규모나 혈세 낭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백억원을 들여 지은 공연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경주예술의전당은 공연 횟수는 2012년 기준으로 1년에 185회. 1천100석 규모의 대공연장이 105회, 350석 규모의 소공연장은 80회에 불과하다. 하루 1회 공연을 한다는 가정하에 대공연장의 경우 1년 최대 105일만 공연이 열렸다.

시민 이동욱(44) 씨는 "애초부터 지역의 문화 수준에 비해 너무 큰 규모로 건립하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며 "웬만한 공연은 관객이 꽤 들어와도 썰렁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돈을 주고 사 온 자체 기획공연 건수는 21건(대공연장이 16건, 소공연장 5건)에 그치고, 돈을 받고 빌려주는 대관공연은 대'소공연장을 합쳐 62건에 이른다.

지난해 3월 대공연장에서 열린 양희은'양희경의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의 경우 당초 2차례 공연을 하려다가 한 차례에 그쳤다. 초청료 6천만원을 줬지만 관객은 600여 명에 불과했다.

김인호 문화사업팀장은 "당시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관심이 선거에 쏠리면서 생각보다 관객이 모이지 않았고, 지역 분위기도 공연하기에 부적합했다"고 했다.

올해는 대공연장의 경우 1월에는 아예 없고, 2월에도 1건에 불과하다. 통상 1월은 시설점검으로 공연이 최소화되는 관례를 감안해도 공연 횟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 공연계의 지적이다.

김인호 팀장은 "1, 2월은 원래 공연 비수기다"며 "대공연장 공연이 105일만 열리지만 공연 준비를 위한 무대 설치 및 철수 일까지 합하면 약 200일 정도 가용이 된다"고 말했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은 지난해 1천 석 규모의 대공연장 자체 기획공연은 11건에 불과하고 소공연장은 44건이다. 기획공연과 대관공연을 합친 전체 공연횟수도 대공연장 30회, 소공연장 90회에 그쳤다. 대구 수성아트피아가 지난해 자체 기획공연을 대공연장 40건, 소공연장 35건을 무대에 올린 것에 비교하면 경주와 안동의 활용도는 매우 떨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혈세 낭비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순희 경주시의원은 최근 경주시의회 시정질의에서 "예술의전당을 짓고 빚을 갚느라 경주시의 부담이 적잖은 가운데 문화재단 직원들의 급여와 운영비까지 지급하다 보니 더 많은 적자가 예상된다"고 했다.

경주예술의전당 엄 관장은 "지금까지 클래식 위주로 공연이 이뤄졌지만 앞으로 아마추어뿐 아니라 비교적 대중적 공연도 무대에 올릴 것"이라며 "시민 눈높이에 맞춰 대중공연, 돈이 적게 드는 가족단위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차별화하겠다"고 했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아직 수요가 많지 않은 탓에 대공연장보다는 소공연장에 치중할 수밖에 없지만 소공연장을 중심으로 클래식, 국악, 대중문화 공연 등이 활발하고 관객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