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내에서 예천으로 가는 버스는 운행 횟수가 많지 않다. 낮 12시 50분에 영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예천군 감천면으로 가는 21번 버스가 유일하다. 상대적으로 풍기읍에서는 예천여객 버스가 하루 5번 풍기역에서 출발한다.
오전 9시 10분 풍기역에서 '예천-예천' 버스에 올라탔다.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세금을 내는 나무' 석송령이 첫 번째 행선지다. 예천의 버스 요금은 구간 요금제다. 10㎞까진 기본요금 1천원이고, 거리에 따라 추가 요금이 붙는다. 다음 달부터는 전 지역이 1천200원인 단일요금제로 바뀐다. 예천군은 예천읍을 중심으로 각 면 지역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관광지나 문화재, 볼거리 등도 각 면 지역에 산재해 있어서 한 번에 선을 긋듯이 돌아보기 쉽지 않았다.
◆홍수에 떠내려와 수호목이 된 지 600년
버스를 탄 지 20분 만에 천향리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석평마을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거대한 소나무 석송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송령은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개로 나뉘며 옆으로 펼쳐지는 반송(盤松)이다. 키는 10m 정도지만 가지는 동서 24m, 남북으로 32m나 뻗는다. 석송령의 그림자 넓이는 1천71㎡로 어른 30~40명이 너끈히 쉴 수 있다. 유난히 눈이 잦았던 겨울이지만 석송령 그늘 아래만큼은 마르고 푹신한 땅이 그대로였다. 옆으로 늘어진 줄기나 가지를 지탱하기 위해 시멘트와 철구조물로 받쳐둔 것도 이채롭다.
석송령의 나이는 600년을 헤아린다. 그 세월만큼이나 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큰 홍수로 마을 앞 석관천을 떠내려오던 나무를 지나가던 나그네가 건져내 이곳에 심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군함의 갑판 신세가 될 뻔했지만 나무를 베러 오던 일본인이 마을 어귀에서 넘어져 크게 다쳐 무사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에는 이 나무에만 폭탄이 떨어지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공습을 피해 나무 밑에 숨었다는 얘기도 있다.
석송령은 사람처럼 호적번호가 있고, 자신 앞으로 등기된 땅이 있다. 돈도 벌고 재산세도 꼬박꼬박 낸다. 작년에도 재산세로 6만9천160원을 냈다. 모은 재산을 마을 사람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주기도 한다. 석송령이 부자가 된 건 1928년이다. 당시 마을에는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재산을 물려 줄 아들이 없던 이 씨는 이 나무의 호적을 만들고 자신의 땅 6천300㎡를 물려줬다. '석평마을의 영험한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석송령의 땅 안에는 마을회관과 두 가구가 터를 잡고 있다. 이들은 매년 토지 이용료로 가구당 쌀 60㎏씩을 낸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세금도 내고 매년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제사 비용도 댄다. 마을에 있는 중학생과 고교생 각 2명씩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적립된 금액이 3천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마을에서 학생이 사라지면서 장학금 지급이 중단됐다. 마을에서 1년 중 가장 큰 행사는 정월대보름에 석송령에 지내는 제사다. 섣달 그믐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그 해의 제사를 주관할 제관을 뽑는다. 제관 외에도 축원문을 읽는 축관과 음식을 준비하는 도관도 결정한다. 제관에 선정되면 3일 전부터 바깥출입을 하지 않을 정도로 몸가짐에 조심한다. 박도준(83) 천향1리 노인회장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가정이 평온하며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만이 제관이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짓는다고 능사는 아닐진대…
천량정류장에서 예천읍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예천온천을 지나 10분만 달리면 수락대와 충효관, 예천천문우주센터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사실 수락대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덕율삼거리를 지나기 전 삼거리슈퍼 앞에서 내려 큰길을 건넌 뒤 예천충효테마공원 방향으로 700m가량 걸어가야 한다. 2차로 도로인데다 인도가 없고, 도롯가로 치운 눈이 얼어붙어 있어 차로를 걸어야 했다. 그나마 차량 통행이 뜸한 게 다행이었다.
10여 분 정도 걸으니 큼지막한 물레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된 보행자 전용 다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매끈하고 너른 기암을 돌아 흐르는 석관천을 따라 100여m 가면 수락대(水落臺)다. 수락대 앞 암벽에는'水落洞天'(수락동천)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다. 원래 수락대는 서애 류성룡이 행장을 풀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었던 곳이다. 이를 추모한 지역 사림이 1602년 바위에 '西厓先生杖銶之所'(서애선생장구지소) 라는 명문을 새겼고, 1915년 지역 내 유림 6문중이 바위 위에 수락대를 지었다.
하지만 물가에 있던 수락대는 1976년 7월 홍수에 쓸려 담장만 남았고, 15년 뒤 복원됐다. 이 과정에서 수락대가 원래 서 있던 자리에는 길이 났고, 정자는 뒤로 물렸다. 정자 아래로 물이 콸콸 흐르고 아이들은 너른 바위에서 물미끄럼을 타고, 어른들은 함께 잡은 고기를 끓여 먹던 추억도 덩달아 빛바랜 사진이 됐다.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곡식을 빻던 물레방아도 산 아래로 옮겨져 전시용 소품 신세로 전락했다.
인근에 있는 예천 충효관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60억원을 들여 지었다는 충효관은 둘러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예천 출신의 충신 정탁과 효자 도시복 이야기를 테마로 구성했지만 전시물은 디오라마나 애니메이션, 조형물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빈약했다. 게다가 도시복의 생가 터인 상리면 용두리에 효(孝)공원까지 조성해놓고 왜 또다시 돈을 들여 전시물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삼거리로 걸어나오면 예천천문우주센터다. 센터 측의 도움으로 중력가속도 체험과 자유유영, 달 중력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해봤다. 위, 아래로 빙글빙글 돌거나 1.5m 이상 뛰어오르는 게 꽤나 신기한 경험이다.
◆문화재가 살아있는 용문사
오후 2시 예천천문우주센터 건너편에서 예천행 버스를 탔다. 예천읍까지 요금은 1천200원, 시간은 20분이면 넉넉하다. 오후 3시 예천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는 용문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요금은 1천800원, 예천읍내를 벗어나 20분이면 충분하다. 절 입구 앞 주차장까지 버스가 들어가니 발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천년고찰인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 두운대사가 창건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문화재도 적지 않다. 용문사에는 윤장대를 비롯해 대장전과 조선 세조시대 교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 좌상 및 목각 탱화 등 보물 4점과 문화재 320여 점이 있다.
산사의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만 마른 땅이 드러났을 뿐, 절 마당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겨울 산사는 번잡하지 않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나그네만 이따금씩 보일 뿐이다. 바닥에 깔린 찬 공기는 마음까지 내려앉고 발소리를 누그러뜨려 걷게 만든다.
한국전쟁의 포화도 견뎌냈던 용문사는 1984년 5월 9일 화마에 휩싸였다. 공교롭게도 석가탄신일 다음날이었다. 창고에 보관한 연등에 남아 있던 불씨가 큰불로 번졌다. 20년에 걸쳐서야 전소됐던 건물들이 거의 복원됐고, 절 내에 문화재를 전시하는 성보박물관도 열었다. 용문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보물은 윤장대(보물 제684호)다.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는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거나 소원을 빈다. 용문사에서는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두 차례만 윤장대를 돌린다.
◆휴대전화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만 나지막한 대나무숲. 영화배우 한석규가 스님을 따라 대숲을 거닌다.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그리고 흘러나오는 목소리.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던 시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동통신사 광고다. 광고의 유명세를 타면서 함께 걷던 스님도 화제가 됐다. 예천 용문사 주지 청안(77) 스님 이야기다. 1998년 주지로 왔으니 벌써 16년째다. "처음 왔을 때 도량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제대로 된 도로도 없었어요. 다락 속에 처박혀 있던 문화재는 습기 때문에 좀이 슬고 쥐가 파먹기도 했고. 그때 부처님께 원을 세웠어요. 잘 보관할 수 있는 전시관을 짓게 해달라고." 2년 후 60억원을 들여 800㎡ 규모의 성보박물관을 지으며 원도 이뤄졌다. 문화재청과 지자체, 지역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소실됐던 불사도 대부분 복원했고,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갖췄다. 노스님은 윤장대를 국보로 승격시키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청안 스님은 "용문사는 예천군의 자산이자 경북 북부 지역의 불교문화의 중심 사찰"이라며 "경북도청이 이전되면 방문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연수시설과 편의시설, 시민 선방, 문화시설 등을 더 갖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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