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덩치값 못하는 문화예술회관] <중>빠듯한 예산 현상유지 급급

부족한 공연비·좁고 낡은 무대…大作 초청 꿈도 못꿔

경북지역 문화예술회관이 예산과 인력 부족, 시설 노후화로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대가 좁아 대작을 초청하기 어려운 구미문화예술회관 전경.
경북지역 문화예술회관이 예산과 인력 부족, 시설 노후화로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대가 좁아 대작을 초청하기 어려운 구미문화예술회관 전경.
좌석 수가 적고 조명도 다양하지 못해 시민회관 수준으로 전락한 포항문화예술회관 전경.
좌석 수가 적고 조명도 다양하지 못해 시민회관 수준으로 전락한 포항문화예술회관 전경.

엄청난 혈세가 투입된 경북의 문화예술회관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전체 예산 중 공연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배정된 예산이 턱없이 적은데다 공연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마저 부족하기 때문. 또 몇몇 문화예술회관은 노후화되고 무대 규모가 작아 인기 공연작을 유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공연비는 적고, 인력은 없고…

경북도내 각 문화예술회관에 배정된 예산 중 순수 공연비는 각 시군마다 천차만별이다. 경주와 구미, 안동 등지는 비교적 많고, 포항 등지는 매우 적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주예술의전당은 공연비 5억원에다 지역 문화예술인을 위한 공연지원금 3억원 등 최대 8억원이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은 5억원에 불과하고, 구미문화예술회관은 6억원이었다. 올해 안동은 6억5천만원이고, 구미는 4억7천여만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포항문화예술회관은 지난해 기준 1억6천만원에 불과하다.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의 경우 한 달 초청료가 무려 50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5억원 안팎의 공연비로는 애초 대작을 초청하기 불가능한 구조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 관계자는 "공연비 5억원으로 지역민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사실상 어려워 소공연장 공연 위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나름 탄탄한 기반을 다진 김해문화의전당만 해도 공연비가 11억원이고, 대구 수성아트피아는 8억원이다.

이 때문에 공연비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한 관계자는 "최소 10억원가량은 돼야 나름 소신을 가지고 공연을 초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문제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공연 필수 인력은 공연기획인력과 무대기술인력.

경주예술의전당과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은 각각 공연기획인력이 3명이고, 구미문화예술회관과 포항문화예술회관은 각각 단 한 명뿐이다.

구미문화예술회관의 경우 지난해까지 3명이 공연기획을 담당했지만 올해 구미시청의 인력 운용 지침에 따라 한 명으로 줄었다. 더욱이 보직이 순환하는 구미시청 소속 공무원이 공연기획을 담당해 전문성도 떨어진다.

구미문화예술회관 공영훈 관장은 "직원 3명이 공연 기획 업무에만 매달려 일할 때도 빡빡하게 돌아갔다. 올해는 직원 한 명이 이 일을 다해야 하는데 지난해의 절반도 해내기 힘들다. 올해는 구미시의 자체 규정에 묶여 관리직들이 공연 기획 업무를 할 수 없게 돼 우리도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대구 수성아트피아의 공연기획인력은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도내 문예회관들은 이처럼 적은 인력에도 공연 기획, 홍보, 섭외 등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무대, 음향, 조명 등을 담당하는 무대기술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주예술의전당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 각각 3명이 있고, 시립중앙아트홀까지 함께 관리하는 포항문화예술회관은 5명이다.

인원이 적은 탓에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의 동시 공연이 불가능하다. 대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리면 무대기술인력이 모두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소공연장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각 문화예술회관은 자구책으로 무대기술인력을 파트타임을 고용해 겨우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예술의전당 예병길 관리담당은 "현재의 무대기술인력을 고려하면 연간 10억원 이상 공연비가 지원돼도 공연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공연비와 무대기술인력까지 함께 지원돼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처럼 수백억원을 들여 공연장을 건립하고도 예산과 인력 지원 부족으로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초의회 등에서 지원 예산 대비 수익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경주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손호익 경주시의원은 "경주예술의전당은 돈 먹는 하마로 경주시 재정에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다"며 "1년에 임대료와 운영료로 수십억원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2011년 10월 공연한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까나'는 1억5천만원을 들여 수입이 고작 2천300만원에 불과했고, 관객도 860명에 불과했다"고 질타했다.

경주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도 최선을 다해 운영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경제적인 논리만을 따져 예산 투입 대비 수익을 갖고 비판해 안타깝다"고 했다.

◆좁은 무대, '대작'(大作) 안 온다

문예회관의 낡은 시설도 대공연장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경주예술의전당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은 최근 개관해 시설 면에서 어디에도 뒤지지 않지만 인력과 예산이 없고, 구미문화예술회관과 포항문화예술회관은 아예 시설 노후화로 시민들에게 만족스런 공연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구미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한 것은 1989년 10월. 유명 건축가 김수근 씨의 유작인 건물의 외형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지만 문제는 대공연장 시설이다.

1천211석 규모의 객석으로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공연장(1천167석)과 견줘도 손색이 없지만 주로 클래식 위주의 오케스트라 공연만 열고 있다.

지난해 대공연장에서 열린 자체 기획공연은 총 7건으로 이 중 4건이 무대 장치가 필요없는 클래식 공연이었다.

문제는 좁은 무대다. 최근 뮤지컬과 오페라 등 공연들이 대형화돼 세트가 크고 무대 장치가 많아지는 추세인데 현재 구미문화예술회관 규모로는 소위 '대작'(大作)을 부르기 힘들다는 것.

구미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의 무대 총 면적은 833㎡(약 251평). 이동식 무대로 변환이 가능한 1천487㎡(450평 남짓) 규모의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절반 정도 크기다.

무대 크기만 늘리는 리모델링을 할 수 없는 구조인 탓에 새로 지어야 하지만 지자체 예산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구미문화예술회관 남국진 공연기획담당은 "20여 년 전 기준으로 이 무대는 당시 최대 규모였지만 세트 변환이 많은 요즘 공연들을 올리려면 세로 길이가 지금보다 더 길어야 한다"며 "무대가 좁다고 세트 몇 개를 빼고 바꾸면 공연 자체가 죽기 때문에 무대 규모가 큰 공연장은 기획사 측에서 아예 외면하는 것"이라고 했다.

포항문화예술회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95년 개관한 포항문화예술회관은 996석 규모로 대공연장으로서는 좌석 수가 적은데다 좌석도 낡았고, 조명도 다양하지 못해 규모가 큰 뮤지컬과 오페라를 공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공연장의 무대 면적도 918㎡(약 277평)로 크지 않다. 50만 명의 도시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시설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 교육, 종교단체 행사 등 문화예술과 거리가 먼 행사도 적지 않다.

시민 김호준(38) 씨는 "문화예술회관이라기보다는 시민회관 수준"이라며 "문화예술회관이지만 뮤지컬 '맘마미아' 등 인기 많은 공연도 오지 않고, 시설도 낡아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항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리모델링을 위해 50억원가량을 포항시에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