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축구의 부패

1978년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개최국 아르헨티나는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위기를 맞았다. 8강이 가려진 2라운드에서 4개 팀씩 2개 조로 나뉘어 조 1위를 차지한 팀이 결승에 오르게 돼 있었으나 아르헨티나에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다. 폴란드를 2대 0으로 누른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3대 0, 폴란드를 3대 1로 누른 브라질과 비겨 남은 페루와의 경기에서 4골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둬야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마리오 켐페스와 레오폴도 루케가 두 골씩 넣는 등 무려 6대 0으로 페루를 눌렀다. 예상 외의 결과에 브라질은 분통을 터뜨리며 결승 진출권을 아르헨티나에 넘겨줘야만 했다. 페루는 특급 스트라이커 테오필로 쿠비야스가 이끌며 1라운드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강팀이었지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물먹은 솜처럼 흐느적거리며 무기력했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에 3대 1로 승리,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당연히 승부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권이 페루에 부채를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매수했다거나 곡물을 무상 전달했다는 설 등이 흘러나왔다.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정권은 무고한 시민의 체포, 고문, 살상 등으로 악명 높아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데 자국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이 절실했다. 하지만, 진위는 가려지지 않았고 그 의혹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유럽연합 산하 공동 경찰 기구인 유로폴이 4일 사상 최악의 축구 승부 조작 사건을 발표했다. 2008년부터 유럽의 380경기를 포함해 30개국, 680경기에서 심판과 선수 등 425명이 가담해 조직적인 승부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승부 조작이 의심되는 경기 중에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1경기와 월드컵 아프리카와 북중미 예선전 3경기도 포함됐다.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조직과 유럽 각국의 브로커가 연계해 선수'심판에게 돈을 건네고 승부 조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축구가 승부 조작에 오염된 것은 슬프고 분노할 만한 일이다. 축구를 보며 열광하고 환희와 좌절을 느끼는 순수한 감정이 배신당했다. 축구가 거대 산업화하고 스포츠 베팅과 연결되면서 오래전부터 자란 부패의 싹이 어느 순간 넓게 퍼지고 있다. 승부 조작 감시를 강화해 썩어가는 경기장을 새 흙과 잔디로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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