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구 남구의 한 병원. 박종현(가명'61) 씨가 어머니 심간난(가명'84) 씨에게 '웅얼웅얼' 거리며 뭔가를 애타게 전하려 했지만 심 씨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심 씨는 얼굴을 아들의 입에까지 갖다대며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가슴만 더욱 찢어질 뿐이었다.
박 씨는 지난해 11월 말 뇌경색으로 쓰러진 탓에 오른쪽 몸을 쓸 수가 없는데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의사표현을 거의 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간호하는 심 씨나 병실 전담간병인은 박 씨의 행동을 보고 눈치껏 알아채야 한다. 이 병실의 전담간병인은 "박 씨가 웅얼대는 소리와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손의 움직임을 보고 겨우 '침대를 내리거나 올려달라' 정도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사업으로 모든 걸 잃다
"오빠와 나이 차가 워낙 많이 나 오빠가 젊었을 때 어떤 일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동네 목욕탕 같은 곳에 보일러를 수리해주는 보일러 수리기사로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업을 시작했고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박 씨의 여동생 박영희(가명'51) 씨의 얘기다.
심 씨와 여동생에 따르면 박 씨는 보일러 수리기사로 일하다 20대 초반에 결혼한 뒤 갑자기 건축사업을 시작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면서 사업을 점점 키워나갔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10년 전 몇천만원짜리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맞으면서 휘청거리더니 5년 뒤 다시 부도를 맞으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1차 부도 때는 집도 팔고 박 씨의 큰아들이 채권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사정해 겨우 해결할 수 있었지만 2차 부도 때는 더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사업이 번창할 때쯤인 20년 전 아내는 박 씨가 사업 때문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떠났다. 이혼 후 남은 두 아들을 심 씨가 도맡아 키워야 했지만 박 씨는 여전히 바빴다. 두 번째 부도 후 두 아들마저 아버지에게 등을 돌렸다. 박 씨가 두 아들 명의로 사채를 몰래 끌어 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떠난 뒤 손자들을 거둬 키웠지요. 아들의 사업이 망하기 전에는 부자간에 사이가 얼마나 좋았는데….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손자들에게 알렸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서서인지 찾아오지 않더군요."
◆술이 덜 깬 줄 알았는데…
박 씨는 2009년 12월 말 교도소에 가야 했다. 부채를 갚지 못한 탓이다. 이후 어머니와 여동생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회관계가 끊어졌다.
2011년 8월 출소한 박 씨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살던 집은 이미 채권자에게 넘어간 상태고, 두 아들 또한 아버지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박 씨는 여동생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다.
새 출발을 위해 박 씨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장 막노동부터 구청 공공근로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박 씨는 이때만 해도 열심히 일하면 사업을 다시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빚을 갚고 작은 가게라도 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심 씨는 "아들이 평소에도 '내가 돈 열심히 벌어서 큰 집은 아니더라도 임대아파트 한 채 얻어서 어머니 모시고 오순도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었다"며 "그때마다 아들이 다시 힘을 내는 것 같아 기특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말. 박 씨는 저녁에 일을 끝내고 같이 일하던 동료와 술을 한잔 마시고 와서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일어나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잘 나오지 않았고 머리도 아팠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탓이려니 생각하고 좀 더 누워 있었지만 도무지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박 씨는 저녁이 돼서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병원에서 '뇌경색'으로 이미 수술이나 치료를 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진단을 받아야 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오빠니까…
박 씨는 오른쪽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한쪽 귀로 겨우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만 표현할 수는 없다. 뇌경색이 발견됐을 때 이미 수술시기를 놓쳐 물리치료나 운동치료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몸 상태도 이런데 병원비까지 쌓여 박 씨를 짓누른다. 대학병원과 지금 입원한 병원에 내야 하는 병원비는 700만원. 이뿐 아니라 매달 입원비 등 100만원씩 내야 한다. 여동생 박 씨는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납부하거나 안 되면 지금 다니는 회사 동료에게 돈을 빌려 겨우 내고 있다. 오빠의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여동생 박 씨는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간다.
"오빠 병원비 때문에 여기저기서 빌려쓴 돈이 얼마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신랑 퇴직금까지 미리 당겨 썼을 정도니까요. 대학 다니는 두 아들 학비도 걱정인데…."
심 씨는 박 씨의 병원비 때문에 사위와 딸의 사이가 나빠질까 봐 걱정이다. 심 씨는 "요즘 사위와 딸이 방에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우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들어보니 병원비 때문이었다"며 "이럴 때는 내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고 이러다 사위와 딸까지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의 여동생은 박 씨를 포기할 수 없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이기 때문이다.
"오빠를 보러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더군요. 그런 오빠를 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불쌍한 생각까지 들었지요. 제가 아니면 오빠를 보살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어쩌겠어요, 아무리 밉고 힘들게 해도 내 오빠인데…."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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