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장미의 내부-최금진(1970~ )

벌레 먹은 꽃잎 몇 장만 남은

절름발이 사내는

충혈된 눈 속에서

쪼그리고 우는 여자를 꺼내놓는다

겹겹의 마음을 허벅지처럼 드러내놓고

여자는 가늘게 흔들린다

노을은 덜컹거리고

방안까지 적조가 번진다

같이 살자 살다 힘들면

그때 도망가라

남자의 텅 빈 눈 속에서

뚝뚝,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

-시집 『새들의 역사』(창비. 2007)

뒤란과 면한 산언덕에 찔레 덤불이 있다. 입춘 코앞까지 쌓여 있던 눈이 겨울비에 녹자 푸른 가지가 드러났다. 겨우내 푸름을 유지하고 있었던가? 게다가 몇 개의 푸른 잎까지 달고 있다.

이은하가 부르는 '겨울장미'는 사실이다. 겨울에도 담장에 기대선 덩굴장미 줄기에 피어 있는 꽃을 어렵사리 볼 수 있다. 여름처럼 성장을 하고 무더기로 피지는 않지만 꽃은 꽃이다. 어쩌다 한두 송이, 성긴 잎 두어 장으로 겨우 꼴을 증명하고 있다.

장미에서 사내를 읽어낸 최금진 시인의 눈은 가히 전복적이다. 장미의 여성을 일순 남녀 양성으로 전환한다. 겨울 장미에서 발견한 불안한 사내와 서러운 여자의 동거가 위태롭고 눈물겹다. 반드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이의 끝나가는 모습이 이렇듯 처절하다. 시인은 그런 삶을 목격한 적이 있다는 말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