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대선 패배의 원인을 열심히 분석하고 반성한다고는 하나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별로 없다. 종교적 엄숙주의의 인상까지 풍기는 '민주당의 신조'라는 것을 내놓았지만 격화소양(隔靴搔痒)이다. 반성의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이 민주당에 바라는 것은 '신조'가 언명한 세비 30% 삭감, 의원연금 폐지, 계파 청산, 의원 겸직 금지와 같은 '자잘한' 것이 아니다. 특히 세비 삭감이나 연금 폐지는 대선 전에 이미 공약한 것이기 때문에 재방송을 할 필요도 없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보다 더 큰 것, 보다 근본적인 무엇이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안보 불안 세력'이라는 각인을 지우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해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라는 종북주의자들의 소굴과 어깨동무를 한 과오를 국민 앞에 통렬히 사죄해야 한다. 지난해 총선 때 민주당은 '연대'를 위해 어떤 지역에서는 후보를 내지도 않았다. 이는 연대라는 기만적 수사로 포장된 정치공학적 야합이었다. 민주당의 사고에는 대한민국의 정통 야당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관은 간데없고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이기겠다는 맹목만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사태가 벌어졌나. 아리랑을 국가(國歌)라 하고, "남에서 북으로 가는 사람이든, 북에서 남으로 가는 사람이든 자기가 있던 곳에 대해 좋게 얘기할 수는 없다"며 탈북자에게 오물을 끼얹은 종북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이 아니었던가.
더 근본적으로는 처절하게 파탄 난 DJ의 햇볕정책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햇볕정책은 돈으로 평화를 구걸하는 전형적 예다. 이런 구걸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2차 대전 직전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팔을 비틀어 주데텐란트를 히틀러에게 넘겨줬다. 그렇게 구걸한 평화는 1년이 못 갔다. 히틀러는 주데텐란트만이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째로 삼켰고 이어 폴란드로 쳐들어갔다. DJ의 햇볕정책도, 그를 계승한 노무현의 대북 유화정책도 같은 꼴이다. 지금 북한은 3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실패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교묘한 논리로 국민을 속이는 버릇을 고치는 것 역시 중요한 반성 항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을 하자"는 문재인 후보의 사이비 경제 이론이다. 듣기는 좋지만 말장난이다.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이다. 고용이 적은 성장은 있지만 성장이 안 되면 일자리는 아예 없다. 문 후보는 이를 모르고 그렇게 말했을까 아니면 알고도 그런 말을 했을까.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모르고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다.(정말 몰랐다면 더 큰 일이지만) 그런 말 잔치로는 취업 못 한 젊은이의 환심은 사겠지만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총선 때 '발의'해 대선까지 써먹은 '무상복지'도 그렇다. 복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 돈을 만드는 방법은 세금을 걷거나 빚을 내는 것 두 가지뿐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증세나 국채 발행 없이 무상복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급해진 새누리당도 이 무상복지 타령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거짓이었음은 박근혜 당선인의 '135조 원 복지 공약'은 증세 없이는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겼어도 진단은 같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거짓말이고,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걷는다면 이미 '무상복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말장난을 그만두지 않으면 다음에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글렀다.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도로의 이동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민주당이 말하는 중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총선과 대선에서 급좌회전을 해서 졌으니 오른쪽으로 방향을 약간 틀겠다는 것은 진정한 반성에서 우러나온 좌표 재설정이 아니라 얄팍한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새누리당의 아류로 비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런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당다운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민주당의 과제는 그런 것을 찾아내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가다듬어내는 일이지 좌와 우의 어정쩡한 절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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