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고양이를 바라보는 관점

불쾌하던 '첫인상'의 기억, 키우다 보니 우스꽝스러움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개와 고양이부터 토끼, 이구아나, 고슴도치, 원숭이 등에 이르기까지 반려동물의 세계는 다양하다. 그리고 반려동물에 대한 관점도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겐 힘이 되어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정 동물이 거부감을 주기도 하고 무서움을 느끼는 대상이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나도 어떤 순간엔 고양이가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중학교 여름방학 때 일이었다. 새까만 코트의 그 녀석은 아파트 단지 내 아스팔트와 잔디 사이 경계 블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채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흔히 대부분의 길냥이들이 사람과 마주칠 때 보여주는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모습과 달리 그 녀석은 내가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앉아 있는 자태는 너무나 당당했고 나와 마주친 시선은 제법 강렬했다. 게다가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생각나게 하는 그 녀석의 칠흑 같은 외투 때문인지, 대낮의 아스팔트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 때문인지, 고양이와 나 단 둘밖에 없던 상황 속 적막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려움을 넘어서 무언가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물론 나에게 위해를 가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고 그렇게 그날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생생할 정도로 나의 뇌리에 깊숙이 남겨져 있다.

지금 내 옆의 체셔를 보면서 그때의 느낌을 받기란 쉽지가 않다. 위압감이나 두려움보다는 귀엽고 어딘가는 꼭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집에서 가장 아늑하고 폭신한 곳을 찾아서 때로는 식빵 모양으로 몸을 웅크리고, 때로는 털 깔개처럼 몸을 쭉 늘어트린 채 엎드려서, 또는 발라당 누운 채로 마주친 눈을 깜박이며 폭신폭신한 귀여움을 발산한다.

어느 순간엔 뛰어오르다 미끄러져 떨어지고는 자신도 놀라고 창피해서 숨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체셔를 보다 보면 어쩌면 나의 인상적인 기억도 내 머릿속에서 조금 각색되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의 습성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한낮의 고양이는 늘 졸린 상태이기에, 나와 마주쳤던 검은 고양이도 그저 햇볕을 쬐며 졸다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가 고양이를 키우지 않고 고양이의 습성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 대신 그날 받았던 두려움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처음 우리 집에 올 때 체셔가 다가오자 비명을 지르며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언니가 어느 순간부턴 오히려 "쟤 가만히 보니까 진짜 인형 같다. 귀엽다"라며 관심을 보였다. 이제 그 언니는 다른 고양이를 보게 되어도 더 이상 비명부터 지르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적어도 고양이를 대하는 관점에서 '무섭다'와 '그렇지 않다'는 그렇게 멀지 않다. 무서워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오래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면모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개개인의 생각과 가치관과 연관되기에 강요할 순 없는 부분이지만 무턱대고 싫어하거나 거부하기에 앞서서 좀 더 자세히 바라본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점도 조금씩 변화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희정(동물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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